2027 수능특강 문학 · 갈래 복합 10
정호승 「뿌리가 꽃이다」
수능특강 수록 제시문 전문을 바탕으로 수선화의 구근, 본질과 외양, 다산과 주모의 사례, 자기 성찰의 흐름을 상세히 분석합니다.
수능특강 수록 제시문 전문
1년 내내 아파트 베란다에 내버려두었던 화분에서 수선화 싹이 돋기 시작했다. 입춘이 지난 날 우연히 베란다 청소를 하면서 빈 화분을 버리려고 하다가 싹이 돋는 것을 발견하곤 마음을 고쳐먹었다. 싹은 점점 자라 꽃대가 올라오고 나중엔 연노란 수선화가 환하게 피어올랐다.
베란다 유리창 앞에 화분을 놓고 갓 피어난 수선화를 보고 또 보았다. 맑다 못해 투명해 보이기까지 하는 수선화의 연노란 꽃 빛이 아름다웠다. 수선화는 마치 내가 보고 싶어서, 나를 만나기 위해 어둡고 좁은 화분 속에서도 겨울을 견디고 피어났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난해 봄 영등포 거리에서 꽃대가 막 올라온 수선화 화분을 사서 꽃이 시들 때까지 보다가 베란다 구석에 처박아 두고 까맣게 잊고 만 나는 수선화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1층인 데다 서향이라 해 질 무렵에만 햇빛이 잠깐 들어오기 때문에 베란다에 화초를 두면 잘 자라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꽃망울이 맺힌 동백나무 화분을 옆집에서 얻어 와 애지중지했는데, 그만 시들시들하다가 끝내 죽고 말았다. 그런 내 집에서 어떻게 수선화는 싹이 돋고 꽃대가 올라와 환하게 세상을 꽃피울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뿌리 때문이다. 수선화는 구근이 있기 때문에 모진 추위와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꽃피운 것이다. 수선화는 꽃이 진 뒤에 잎과 줄기가 마르면 구근을 수확해 잘 말렸다가 가을철에 다른 화분에 옮겨심기를 해야 이듬해 봄에 꽃이 잘 핀다. 그대로 두면 장마철에 구근이 썩어 버릴 수도 있고 영양이 손실돼 구근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 구근을 옮겨 심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뒀음에도 불구하고 수선화는 피어올랐다. 그것은 구근이 자신의 본분과 본질을 결코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수선화 구근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제서야 꽃이 뿌리로 보였다. 실은 모든 꽃은 뿌리다. 꽃은 뿌리에서부터 피어난다. 뿌리가 꽃을 피우는 것이다. 꽃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뿌리도 아름다운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 점을 잊고 산다. 꽃과 뿌리를 구분함으로써 꽃의 가치만 소중히 여기고 뿌리의 가치는 마냥 잊고 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꽃은 뿌리의 꽃이다. 뿌리가 바로 꽃이고 꽃이 바로 뿌리다. 뿌리의 노고와 사랑 없이 저절로 피어나는 꽃은 없다. 『논어』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있다. 그림은 흰 바탕이 있음으로써 그 위에 그릴 수 있다는 의미로, 본질적 갖춤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어떠한 예술이든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먼저 이뤄져야 창작의 아름다움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본질이라는 뿌리 없이 외양이라는 꽃만 아름답게 피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을 누구나 존경하고 흠모하는 까닭은 조선 선비로서의 본질에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선비의 본질이란 모름지기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과 고통을 함께하는 데에 있는데 다산 선생은 선비로서의 실천적 본질을 결코 잃지 않았다.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 주막에 가면 주막 뜰에 주모의 모녀상이 조각돼 있다. 왜 다산 주막에 다산 선생 조각상은 없고 주모 모녀의 조각상만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은 외면했으나 주모만은 귀양 간 다산 선생께 국과 밥을 꼭 챙겨 드리며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끼니때가 되면 식사를 함으로써 배고프지 않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본질을 지니고 있는데 주모는 그 본질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다산 선생으로 하여금 유배 생활 중에서도 선비로서의 실천적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큰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주모가 다산 선생의 유배의 꽃을 활짝 피우게 한 것이다.
주모는 다산 선생께 “부모의 은혜는 다 같지만 어머니의 수고가 더 많은데 왜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해서 아버지의 일가(一家)는 크게 이루는가” 하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이에 다산 선생은 “아버지는 나를 낳아 준 시초다. 어머니의 은혜가 비록 깊지만 하늘이 만물을 내는 것 같은 큰 은혜가 더욱 무거운 것”이라고 답변한다. 그러자 주모는 “풀과 나무에 비교하면 아버지는 종자요 어머니는 토양이다. 종자를 땅에 뿌리는 일은 지극히 보잘것없지만 토양이 종자를 길러 내는 공적은 아주 크다”고 말한다.
나는 주모의 이 말에 주목한다. 주모는 종자를 키우는 토양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뿌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흙이 없으면 뿌리가 없고, 뿌리가 없으면 꽃이 없고, 꽃이 없으면 열매도 씨앗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수선화를 바라본다. 수선화 화분에 준 물이 구근에까지 도달하는 것을 느끼면서 내 본질이 무엇인지 나를 들여다본다. 내 본질을 숨기고 가식과 허상의 껍질을 두르고 사는 내가 보인다.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에 내가 서 있지 않고 남이 서 있는 자리에 내가 서 있다. 감사함을 잃어버리고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사는 탓이다. 꽃과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에서 자신을 찾듯 나도 나 자신에게서 나를 찾아야 한다.
– 정호승, 「뿌리가 꽃이다」
작품 핵심 해설
주제: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본질과 기반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의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성찰.
방치한 화분에서 꽃이 핀 일을 계기로 ‘왜 피었는가’를 질문하고 구근의 힘을 발견합니다.
꽃은 외양·성과, 뿌리는 보이지 않는 본질·바탕에 대응하며 둘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나아갑니다.
다산의 선비 정신과 주모의 돌봄을 통해 본질에 충실한 삶을 구체적 사례로 확장합니다.
마지막에는 다시 수선화로 돌아와 가식·비교의 삶을 반성하고 ‘나 자신에게서 나를 찾는’ 삶을 지향합니다.
세부 해설
- 첫 장면의 핵심은 글쓴이가 정성껏 돌본 화분이 아니라 1년 동안 내버려둔 수선화 화분에서 싹이 났다는 뜻밖의 발견입니다.
- 입춘은 계절적 전환과 함께 수선화의 새 생명이 드러나는 시점을 구체화합니다.
- 글쓴이는 수선화를 의인화하여 자신을 만나기 위해 겨울을 견딘 것처럼 느끼며, 방치했던 자신의 태도에 미안함을 느낍니다.
- 서향 1층, 짧은 햇빛, 죽은 동백나무의 사례는 수선화의 개화를 더욱 예외적이고 놀라운 사건으로 만듭니다.
- “그것은 바로 뿌리 때문이다”는 경험 서술에서 사색과 논증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입니다.
- 수선화의 구근은 꽃을 피우는 물질적 기반이면서 이후 ‘본질’의 상징으로 확장됩니다.
- 제대로 옮겨 심지 않았는데도 꽃이 핀 까닭을 “자신의 본분과 본질을 결코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데서 글쓴이의 가치 판단이 드러납니다.
- “꽃이 뿌리로 보였다”는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뀐 결정적 문장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 속에서 보이지 않는 기반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 “뿌리가 바로 꽃이고 꽃이 바로 뿌리다”는 둘의 동일성을 생물학적으로 주장하는 말이 아니라, 성과와 본질이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역설적 표현입니다.
- ‘회사후소’는 흰 바탕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을 끌어와, 꾸밈이나 성취 이전에 본질적 바탕이 필요하다는 논지를 강화합니다.
- 예술의 아름다움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는 설명을 통해 논의가 식물에서 인간의 삶과 창작으로 확장됩니다.
- 다산 정약용은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과 고통을 함께하는’ 선비의 본질을 실천한 인물로 제시됩니다.
- 다산 주막의 주모는 화려한 명성보다 타인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밥과 국의 돌봄을 통해 인간적 본질에 충실한 삶을 보여 줍니다.
- 주모의 돌봄은 다산이 유배 중에도 선비로서의 실천적 삶을 이어 갈 수 있게 한 보이지 않는 토대로 해석됩니다.
- 다산과 주모의 대화에서 종자와 토양의 비유는 ‘시초’만큼이나 ‘길러 내는 기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능합니다.
- 흙 → 뿌리 → 꽃 → 열매·씨앗의 연쇄는 모든 결과가 기반과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논리를 단계적으로 보여 줍니다.
- 마지막에 수선화로 다시 돌아오는 구성은 처음의 구체적 경험과 이후의 사색을 연결하며 글 전체를 원형적으로 닫습니다.
- “내 본질을 숨기고 가식과 허상의 껍질을 두르고 사는 내가 보인다”에서 타인 비판이 아니라 자기반성이 글의 최종 목적임이 분명해집니다.
- “남이 서 있는 자리에 내가 서 있다”는 남과의 비교 때문에 자신의 고유한 자리와 본질을 잃은 삶을 의미합니다.
- “나도 나 자신에게서 나를 찾아야 한다”는 작품의 실천적 결론으로,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자기 본질에 충실한 삶을 지향합니다.
갈래 복합 연결 포인트
「멸치」가 굳은 몸에 남은 물결에서 본래의 생명성을 보고, 「버팀목에 대하여」가 사라진 버팀목에서 현재를 지탱하는 관계의 힘을 본다면, 이 글은 화려한 꽃 뒤의 뿌리와 구근에서 본질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세 작품 모두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힘을 삶의 핵심 가치로 끌어올립니다.
출제 포인트 15
- 방치된 수선화 화분에서 싹이 난 뜻밖의 경험
- 동백나무의 죽음과 수선화의 개화 대비
- 구근이 꽃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기반이라는 점
- 구근의 ‘본분과 본질’에 대한 가치 부여
- ‘꽃이 뿌리로 보였다’는 인식 전환
- 꽃=외양·성과, 뿌리=본질·바탕의 대응
- ‘회사후소’를 통한 본질과 꾸밈의 관계 설명
- 예술 창작의 아름다움도 인간적 바탕에 의존한다는 논리
- 다산의 선비로서의 실천적 본질
- 주모의 돌봄이 다산의 삶을 가능하게 한 토대라는 점
- 아버지=종자, 어머니=토양 비유의 기능
- 흙-뿌리-꽃-열매·씨앗의 인과 연쇄
- 구체적 경험 → 사색 → 사례 → 자기 성찰의 구성
- 가식·허상·비교의 삶에 대한 반성
- ‘나 자신에게서 나를 찾는’ 본질에 충실한 삶의 지향
자체 제작 고난도 변형문제
1. 수선화가 다시 꽃을 피운 경험이 글 전체에서 하는 역할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 ④
수선화의 개화는 단순한 식물 경험을 넘어 ‘본질’에 관한 사색 전체를 촉발합니다.
2. 동백나무의 사례를 제시한 효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 ②
좋지 않은 환경과 동백나무의 죽음은 수선화의 개화를 더욱 이례적으로 만들어 ‘뿌리’에 대한 질문을 강화합니다.
3. “그제서야 꽃이 뿌리로 보였다”의 의미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 ⑤
‘꽃’만 보던 시선이 ‘뿌리’까지 보게 되는 인식의 전환이 글 전체의 핵심입니다.
4. ‘회사후소’를 인용한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 ①
흰 바탕과 그림의 관계는 본질과 외양의 관계를 설명하는 논거로 쓰입니다.
5. 다산 정약용의 사례가 글에서 수행하는 기능은?
정답 ③
다산은 ‘선비의 본질’에 충실한 삶의 구체적 사례로 제시됩니다.
6. 다산 주막의 주모가 중요한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 ④
주모의 돌봄은 눈에 띄지 않지만 타인의 삶과 실천을 가능하게 한 ‘뿌리’와 같은 기반입니다.
7. 주모가 ‘아버지는 종자요 어머니는 토양’이라고 한 비유의 핵심은?
정답 ①
종자를 키워 내는 토양의 역할을 통해 ‘보이지 않는 기반’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합니다.
8. 마지막 부분에서 글쓴이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삶은?
정답 ⑤
마지막 자기 성찰은 ‘가식과 허상’, ‘남과 비교하는 삶’을 명시적으로 비판합니다.
9. 글의 구성 방식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답 ②
수선화 경험 → 뿌리와 본질의 사색 → 다산과 주모 → 다시 수선화와 자기 성찰의 흐름입니다.
10. “나도 나 자신에게서 나를 찾아야 한다”가 드러내는 삶의 지향은?
정답 ③
글의 결론은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본질을 회복하는 삶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