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수능완성 · 실전 모의고사 5회 · 현대 소설
최인호 「견습 환자」 원문·상세 해설 및 변형문제
수능완성 수록 원문
[앞부분 줄거리] ‘나는 습성 늑막염을 진단받고 한 병원에 입원한다.
㉠ 내가 정말로 아프기 시작한 것은 늙은 간호원이 병실 앞에 내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걸어 준 후, 수의 같은 환자복을 주었을 때였다. 누가 입던 환자복이었는지 몰라도 체구에 맞지 않는 환자복을 입고 우두커니 서 있는 꼬락서니는 평소에 생각하던 자기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려 버리기에 충분하였으며, 내 얼굴엔 완연히 병색이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의 부축 없이는 변소에도 가지 않았고, 의사만 보면 공연히 매어달리고픈 충동을 받곤 했다.
입원한 다음 날, 한 떼의 의사들이 병실로 몰려와, 겁에 질려 있는 나를 전범 다루듯 사납게 벽 쪽을 향하게 한 다음, 주삿바늘로 옆구리를 찔러 굉장한 양의 노르께한 액체를 빼내었고, 나는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유난히 하얀 병실 벽을 마주 바라보며 그들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 약간 울고 있었다. 그리고 작업을 끝마치고 사라져 가는 그 집행인들의 흰 가운에서 병실 벽처럼 차디찬 체온을 절감했다.
나는 이렇게 입원 생활을 시작했으며, 어느 틈엔가 아침이면 체온계를 입에 물고 사탕을 깨물세라 조심스럽게 녹이는 유아처럼 체온을 재는 모범 환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입원한 지 일주일쯤 후부터는 어느 정도 병이 차도를 보이기 시작해서 열도 정상으로 내려갔고, 더욱이 내 병은 가벼운 폐결핵에서 기인된 늑막염으로 까짓 폐결핵이야 요새 약들이 좋으니까 감기 정도로 생각해 두면 틀림없다는 의사의 말투에, 한편은 불안도 하고 한편 위안도 되어, 언제는 반쯤 남기던 죽을 꾸역꾸역 모조리 긁어 먹게 되었던 것이다.
㉡ 그러면서도 차츰차츰 결핵에 걸린 자신이 실감되어 오고, 아무리 약이 좋다고 하나 앞으로는 긴 시간 창백한 얼굴로 낙엽 구르는 소리에도 눈물을 흘려야 하는 폐병 환자 노릇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해져서, 나는 몇 번이고 세면대 긴 체경 앞에 서서 메기처럼 눈을 껌벅껌벅이며 혼자 울었다.
그러나 도대체 병이라면 어디를 만지면 통증이 오고, 어디를 움직이면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이 와야 할 텐데, 이건 어디를 만져도 아프지 않고, 그저 오후만 되면 끈적끈적한 늪지대에 빠져 버린 듯한 미열만 오는 것으로, 좀 후에는 에잇 모르겠다는 안이한 체념으로 시간 맞추어 밥을 먹고, 빈 시간이면 잠을 자는 입원 생활에 만족하게 되어 버렸다. 입원 생활은 금붕어 같은 생활이었다. 모든 환자들은 양순한 민물고기처럼 조용히 지느러미로 미동을 하면서 병원을 부유하고 있었다. 나는 이 붕어 같은 병원 생활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오랜 방황 끝에 고향에 닻을 내린 범선처럼 나는 한가로웠고, 그리고 즐거웠다.
[중략]
그러다가 반대편에 서서 어둠에 웅크리고 있는 병동을 바라보면 참으로 기괴한 감격에 싸여 버리는 것이었다. 병동은 파도가 밀려오는 철 지난 해변에 서 있는 방갈로처럼 우울하게 해감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모든 병실엔 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으며 그 유리창 너머로 환자들의 움직이는 모습이 내다뵈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가 투명한 바닷물 속을 들여다볼 때, 그 속에 수많은 해초와 생물이 수런거리고 있는 것처럼 모든 병실이 제각기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보육기 속에서 생명을 키워 가는 유아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생생한 경이였다.
일 층, 이 층, 삼 층, 사 층, 모든 병동은 밤에도 환히 눈을 뜨고 있었다. 간호원들은 병실과 병실 사이를 부산스레 헤매고 있었고, 간혹 의사들은 ‘비상’을 알리는 주번 하사 같은 기민한 동작으로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 나는 그들이 균을 잡아먹는 백혈구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무표정하고 뻣뻣한 얼굴에서, 균을 거부하는 강력한 항생제의 효능을 느껴야 했다. 그즈음, 나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입원한 이후 저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발견치 못했다는 중대한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은 참으로 불쑥 일어난 느낌이었다.
언젠가 나는 외국 잡지에서 잘 인쇄된 화장품 광고를 본 일이 있었다. 그 광고는 남자들이 면도 후에 바르는 미안수를 선전하고 있었는데, 나는 지금도 그리스 조각처럼 잘생긴 그 남자가 유난히 파르스레 빛나는 턱 위에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세련된 웃음을 띠고 있는 모습을 기억해 낼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인 광고여서, 그 잘 깎은 턱과 웃음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그 미안수를 사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만일 그 사내가 그 최면술 거는 듯한 매혹적인 웃음을 제거하고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면, 나는 그 화보가 미안수 선전 광고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 병원 의사들은 미안수 선전 광고에 나올 만한 사내들이 미소를 결여하였음으로 하여, 자기 병원 왕래를 권장하는 무표정한 히포크라테스의 모델로 아깝게 전락해 버린 듯 보였다. 그들은 일 초의 주저함도 없이 내장을 자르고, 뼈를 긁을 수 있는 권위를 보여 주는 모델로서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들이 만약 외무 사원처럼 웃으며 환자의 증세를 물어본다면, 그 환자는 얼마나 심리적인 위안을 받을 것인가.
㉣ 이리하여 나는 그들을 웃기기 위해서 고용된 사설 코미디언 같은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갖게 되었고, 밤낮으로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알아내려 애를 썼다. 나는 스스로의 청진기를 들고 그들을 진단하기 시작했고, 웃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인이 그들의 어느 부분에서 강하게 생겨나는가 하는, 임상 실험의 과정에 굉장한 열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나 가령 어느 한 곳이 가려울 때, 정확히 그곳을 집어서 긁어 주는 쾌감이라든지, 어린애가 사과를 먹고 싶어 할 때는 직접 사과를 사다 주면 충족한 웃음을 볼 수 있다는 프로이트의 가장 기본적인 이드와 에고 학설을 응용해서 그들을 웃겨 보려던 나의 첫 번째 시도는 곧 좌절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난히 가려운 곳도 없었고, 무언가 가지고 싶은 욕구 본능도 퇴화되어 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잠을 자야 할 땐 수면제를 먹었으며, 배가 고플 땐 의사 전용 식당에서 영양이 풍부한 햄버그스테이크를 뜯었다. 소화가 안 될 땐 소화제를 먹었으며, 음악이 듣고 싶으면 환등실에서 발랄한 간호 학교 학생들과 구운 토스트를 씹으며 음악을 들었다. 피로할 땐 가루 비타민 C를 물에 타 먹었으며, 성욕이 고개를 들면 간단히 진통제로 말살해 버렸다. ㉤ 도대체가 그들은 충분한 영양을 취하고 있는 온상 속의 귀족 식물이었던 것이다. 며칠이 지나도 나는 그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 전범: ‘전쟁 범죄인’을 줄여 이르는 말. * 체경: 몸 전체를 비추어 볼 수 있는 큰 거울. * 미안수: 피부에 수분을 주어 피부 표면을 다듬는 화장수. = 로션.
작품 개관
현대 소설·단편 소설
1인칭 주인공 시점
규칙과 의료 권력이 작동하는 병원
억압적인 병원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감정을 잃은 의료진에 대한 연민
환자복과 문패는 ‘나’에게 환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나’는 병원 규칙을 내면화해 ‘모범 환자’가 된다. 이후 ‘나’의 시선은 자신의 병에서 무표정한 의료진으로 이동한다. 웃음을 인간적 교감과 심리적 위안의 표지로 본 ‘나’는 의사들을 웃기려 하면서 환자라는 관찰 대상에서 의료진을 진단하는 관찰 주체로 역할을 바꾸려 한다. 그러나 의사들의 욕망과 감정이 약물과 시설에 의해 관리되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시도는 실패한다. 작품은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까지 제도에 길들여진 존재로 형상화한다.
중요 표현·소재 해설
객관적 병세보다 제도적 표지가 먼저 ‘환자’라는 자기 인식을 강화한다.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비대칭적 권력 관계를 군대·형벌의 이미지로 드러낸다.
외부 규칙이 내면화되어 스스로 행동을 통제하는 상태를 보여 준다.
제한된 공간에서 규칙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환자들을 비유한다.
의료진의 치료 기능과 효율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무표정하고 기계적인 성격을 부각한다.
권위적 치료 관계에서 결핍된 인간적 교감과 환자에게 제공될 심리적 위안을 상징한다.
환자가 오히려 의료진을 관찰·진단하는 주체가 되려는 역할 전도를 보여 준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만 욕망과 감정이 퇴화한 의료진을 풍자한다.
EBS 원문 문항 정답·해설
18번은 특별한 인물 간 갈등보다 병원 생활에 적응하고 의료진을 관찰하는 ‘나’의 내면 심리가 중심이라는 점을 묻는다. 19번에서 ‘웃음’은 의사들이 환자에게 줄 수 있는 심리적 위안이다. 20번은 ㉡ 이전에 이미 병이 차도를 보였으므로 입원 직후부터 계속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고 보는 설명이 부적절하다. 21번에서 환자들의 움직임은 규율 권력에 저항하는 행동이 아니라 병원 규칙에 순응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독립형 변형문제 10제
1. 윗글의 서술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이 글은 새로운 인물 간 갈등의 확대보다 병원 생활에 적응하고 의료진을 관찰하는 ‘나’의 내면 변화가 중심이다.
2. ㉠의 기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문패와 환자복은 제도적으로 부여된 표지이며, ‘나’가 자신을 환자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3. ‘전범 다루듯’,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 ‘집행인들’의 공통된 효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의료 행위를 형벌·집행의 이미지로 표현하여 환자가 수동적 대상으로 놓인 권력 관계를 강조한다.
4. ‘모범 환자’가 된 ‘나’를 가장 적절하게 설명한 것은?
정해진 시간에 체온을 재고 먹고 자는 생활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규칙의 내면화를 보여 준다.
5. ‘금붕어 같은 생활’과 ‘양순한 민물고기’의 의미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병원은 수조처럼 제한된 공간이고, 환자들은 그 안에서 규칙에 맞추어 양순하게 움직인다.
6. ㉢의 비유를 가장 적절하게 이해한 것은?
백혈구·항생제는 치료 기능을 긍정하는 동시에 의료진의 무표정하고 기계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이중적 비유이다.
7. ‘웃음’에 대한 ‘나’의 인식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나’는 의사가 웃으며 증세를 묻는다면 환자가 심리적 위안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8. 미안수 광고의 사내와 병원 의사들을 대비한 효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광고 속 웃음과 무표정한 의사를 대비하여 의료 현장에서 결핍된 인간적 교감의 가치를 드러낸다.
9. ㉣에서 나타나는 ‘나’의 변화로 가장 적절한 것은?
‘스스로의 청진기’와 ‘임상 실험’이라는 표현은 의료진을 관찰·진단하는 주체가 되려는 역할 전도를 보여 준다.
10. ㉤ ‘온상 속의 귀족 식물’의 의미로 가장 적절한 것은?
잠·식욕·소화·피로·성욕까지 약물과 시설로 관리되는 모습을 통해 풍족하지만 자율적 욕망과 인간적 감정이 퇴화한 상태를 풍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