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수능특강 문학 · 갈래 복합 11
김인숙 「길의 안내자들」
교재 수록 제시문 전문을 먼저 읽고, 여행 경험이 삶에 대한 깨달음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합니다.
중국 다롄의 길 안내자 ‘향도’를 관찰한 여행 경험에서 출발하여, 떠남과 회귀·실패와 대가가 공존하는 삶의 여정에 대한 깨달음을 드러낸 수필입니다.
제시문 전문
나는 대개 길을 잃고 망연자실 서 있다가 서둘러 되돌아갈 터널을 찾는다. 나는 떠나는 쪽보다는 늘 회귀하는 쪽이어서, 실패를 자인하는 순간에 가장 먼저 취하는 태도는 더 멀리 나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쪽이다. 그리하여 여행지에서 남는 사진은 황홀한 추억보다 망설임과 초조함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빛나는 사진은 있다. 대체 언제 찍었는지, 어떤 상황에서 찍혔는지 알 수 없으나 사진 속의 나는 잇몸을 다 드러낸 채 웃고 있다. 기억할 수 없는 찰나가 나를 위로한다. 무엇이 걱정이랴. 나는 수십 년을 살고도 여전히 살아 있으니, 떠나는 일은 이미 내 몸이 아니랴.
지난해까지 내가 몇 년 동안 머물던 중국의 도시 다롄에는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직업이 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다 보면 팻말 하나씩을 들고 길가에 줄줄이 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의 직업은 ‘향도(嚮導)’ 즉 길을 안내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향도’라고 씌어진 공책 크기만 한 팻말을 가슴 앞으로 치켜들고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고 있다. 그들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그들이 인력 시장에 나와 있는 구직자들이 아닌가 했다. 길을 안내하는 사람들이라는 팻말을 봤는데도, 그 남루하고 한가해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어디에든 날 좀 데려가 주세요’라고 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직업을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길을 모르는 운전자들이 그들에게 길을 물을 때, 그들은 지도를 판매하거나 혹은 손가락을 펴서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운전자의 차에 동승을 해서 운전자의 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거나 가장 안전한 길을 안내한다. 마치 길을 묻는 어린아이나 노인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친절한 소년처럼. 그러니, 길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한은 아무 쓸모도 없는 그들이 하루 종일 땡볕과 추위, 먼지 속에서 꿈꾸는 것은, 세상의 단 한 사람 오직 그밖에는 알지 못하는, 아주 먼 곳의, 어떤 곳을 물어봐 주는 고객이 나타나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경쟁자는 너무 많고 고객은 너무 없는 것이다.
여행자는 비굴할 필요 없이 그들에게 무엇이든 물을 수 있다. “여보세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물론 대가는 치러야 한다. 먼 길은 먼 길만큼, 가까운 길은 가까운 길만큼. 그러나 나는 바로 이 대가가 마음에 들거니와, 세상에 대가 없이 도달할 수 있는 종착역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행히 중국에서 길 안내자들에게 지불하는 대가는 아주 싸다. 다만 낯선 사람을 보조석에 태워야 하고, 그 낯선 이가 지시하는 길이 완전히 안전하고 또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어야 하는, ‘사소한’ 문제점이 있을 뿐이다. 안내자들은 결코 망설이거나, 차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가야 할 곳을 모른다고 말하는 경우도 결코 없다. 처음 가는 길을 갈망정, 안내자들은 망설임 없이 결연한 어조로 좌회전과 우회전을 거듭해 말하고, 가끔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운전자들에게는 며칠 전까지 있던 길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다. 어차피 모르는 길에 있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 안내자의 얼굴에 먼저 미소가 번진다.
아니, 그런데 길 안내자들, 그들은 어떻게 돌아오나? 나는 그 가난한 귀로를 생각해 본다. 멀리 떠날수록 멀리서 돌아와야 할 터이니, 그렇게 멀리서 돌아오는 길은 지치고, 배고프고, 고단한 것임에 틀림없을 터이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는 길 내내 절대로 주먹 쥔 손을 펴지 않을 터이니, 그 주먹 안에 들어 있는 몇 푼의 동전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아주아주 가난한 귀로, 그러나 다행히 텅 빈 손은 아닌 것. 길에서 얻은 몇 푼의 동전, 그토록 가난해서 소중한 대가 같은 것, 말이다.
※ 위 제시문은 교재에 수록된 작품 부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략 없이 옮긴 것입니다. 문항용 표시는 넣지 않았습니다.
작품 상세 해설
여행의 시간은 깊고 몽롱한 터널처럼 불확실하지만 모든 터널은 바깥을 향해 열려 있다. 여행은 닫힌 고립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이어지는 통과 과정이다.
글쓴이는 수십 년의 여행이 대개 실패였다고 말한다. 여행을 낭만적으로 미화하지 않고 기대와 실제의 불일치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길을 잃었을 때 더 멀리 나아가기보다 되돌아갈 터널을 찾는다. 실패를 인정한 뒤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자신의 성향을 직접 밝힌다.
여행에는 황홀한 추억보다 망설임과 초조함이 많이 남지만, 기억나지 않는 순간에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은 현재의 자신에게 위로가 된다.
계속 떠나고 돌아오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떠남 자체가 삶의 한 부분, 즉 자신의 몸에 밴 행위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향도는 지도나 손짓만으로 길을 설명하지 않는다. 운전자의 차에 직접 동승하여 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거나 안전한 길을 안내한다.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라는 팻말을 보고도 남루하고 한가해 보이는 모습 때문에 오히려 어디론가 데려가 달라는 사람처럼 느낀다. 역할과 외양의 역설이 드러난다.
길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야 일이 생기기 때문에 땡볕·추위·먼지 속에서 고객을 기다린다. ‘경쟁자는 너무 많고 고객은 너무 없는’ 현실이 생계의 불안정을 보여 준다.
먼 길은 먼 길만큼, 가까운 길은 가까운 길만큼 대가를 치른다는 방식에서 글쓴이는 삶의 원리를 발견한다. 어떤 종착역에도 대가 없이 도달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확장된다.
낯선 이를 보조석에 태우고 그의 지시를 완전히 믿어야 하는 일은 실제로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따옴표를 통해 부담의 크기를 반어적으로 강조한다.
향도는 처음 가는 길이라도 결연한 어조로 좌회전과 우회전을 지시한다. 과정의 불확실성보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제시된다.
여행자의 목적지 도착을 바라보던 시선이 안내자의 귀로로 이동한다. 이 질문이 단순한 여행기에서 삶의 의미를 사유하는 글로 전환되는 핵심 지점이다.
멀리 안내할수록 돌아오는 길은 더 길고 고단하다. 그럼에도 주먹을 펴지 않는 이유는 몇 푼의 동전이 자신의 노동을 통해 얻은 작지만 소중한 대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삶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문장을 통해 관찰한 경험을 인생 전체에 대한 비유로 확장한다.
삶은 실패와 불안, 떠남과 회귀를 포함한 고단한 여정이지만, 그 길에서 얻은 작은 경험과 대가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빈손인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드러낸다.
출제 포인트 15
- ‘터널’이 여행의 불확실한 통과 과정을 비유한다는 점
- ‘바깥을 향해 열려 있다’가 세상과의 연결 가능성을 뜻한다는 점
- 글쓴이가 자신의 여행을 대개 실패였다고 평가한다는 점
- 길을 잃을 때 전진보다 회귀를 택하는 성향
- 기억할 수 없는 웃는 사진이 위로의 기능을 한다는 점
- ‘떠나는 일은 이미 내 몸’의 함축
- 향도는 운전자의 차에 동승해 직접 길을 안내한다는 점
- 향도의 외양과 직업 역할 사이의 역설
- 경쟁자는 많고 고객은 적은 노동 현실
- 거리와 대가의 비례에서 삶의 원리를 발견하는 과정
- ‘사소한’에 따옴표를 붙인 반어적 효과
- 과정의 불확실성과 목적지 도착의 대비
- “그들은 어떻게 돌아오나?”가 시선을 귀로로 전환한다는 점
- 몇 푼의 동전이 작지만 소중한 노동의 결실이라는 점
- 향도의 가난한 귀로가 인생의 여정에 대한 비유로 확장된다는 점
갈래 복합 11 연결 분석
자전거 바퀴의 회전과 연상 작용을 통해 상실의 기억을 치유와 포용의 이미지로 바꾼다.
강의 회귀적 흐름을 삶 전체에 겹쳐 생성·소멸·상실·죽음을 성찰한다.
향도의 실제 귀로를 통해 떠남과 돌아옴, 노동의 대가가 공존하는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자체 제작 클릭형 변형문제 10제
교재의 실제 문항과 선택지를 옮기지 않고 제시문의 핵심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 만든 문제입니다.
1. 글쓴이가 여행의 시간을 ‘터널 안’에 있다고 본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터널은 어둡고 몽롱하지만 바깥으로 열려 있다. 여행 역시 불확실한 통과의 시간이면서 새로운 세계와 연결되는 경험이다.
2. 여행에서 실패했다고 느낄 때 글쓴이가 취하는 태도는?
글쓴이는 자신을 ‘떠나는 쪽보다는 늘 회귀하는 쪽’이라고 직접 설명한다.
3.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는 자신의 모습이 하는 역할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찍혔는지 알 수 없지만 웃고 있는 사진이 ‘나’를 위로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4. 다롄의 ‘향도’가 길을 안내하는 방식은?
향도는 운전자의 차에 직접 타서 가장 빠르거나 안전한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다.
5. 글쓴이가 향도를 처음 구직자로 오해한 이유는?
팻말의 뜻을 알고도 외양 때문에 역할과 반대되는 인상을 받았다는 점이 핵심이다.
6. “대가 없이 도달할 수 있는 종착역”이 없다는 말의 의미는?
향도에게 지불하는 길값에서 출발해 삶의 어떤 도달에도 대가가 따른다는 보편적 인식으로 확장된다.
7. ‘사소한’에 따옴표를 붙인 효과는?
낯선 이를 보조석에 태우고 그의 판단을 믿어야 하므로 실제 부담은 크다. ‘사소한’은 반어적 표현이다.
8. “그들은 어떻게 돌아오나?”가 글의 흐름에서 하는 역할은?
이 질문 이후 향도가 홀로 돌아가는 고단한 길과 주먹 속 동전에 주목하며 글의 사유가 삶의 의미로 확장된다.
9. ‘주먹 안에 들어 있는 몇 푼의 동전’의 의미는?
몇 푼에 불과하지만 긴 귀로를 감수하고 얻은 노동의 구체적 결실이므로 소중하다.
10. 작품의 마지막 깨달음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향도의 가난한 귀로와 몇 푼의 동전을 삶에 빗대어, 고단한 과정에서도 얻는 작고 소중한 것이 있음을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