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공통국어2 김애란 「노찬성과 에반」 해설·문제

창비 공통국어2 · 1. 한국 문학의 흐름 · (4) 노찬성과 에반

김애란 「노찬성과 에반」

교과서 제시문을 먼저 읽고, 찬성의 심리 변화와 휴대 전화·안락사 비용·냉장 트럭·자루의 기능, 책임과 욕망의 충돌, 결말의 ‘용서’가 남기는 의미까지 차례대로 정리합니다.

교과서 제시문

[앞부분의 줄거리]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열두 살 초등학생 노찬성은 두 해 전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는 갓길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고의로 사고를 냈다는 의심을 받아 보험금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를 여의고 한 달쯤 지나서 찬성은 할머니가 일하는 고속 도로 휴게소에 버려진 늙은 개를 만나고 개에게 ‘에반’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할머니의 반대에도 찬성은 자신이 에반을 책임지겠다고 하며 키운다. 에반이 자신을 지켜 줬다고 생각한 찬성은 언젠가 에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도 에반을 꼭 보호해 줘야겠다고 다짐하고, 둘은 어느새 서로 가장 의지하는 존재가 된다. 2년 뒤, 찬성은 에반이 이상해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암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날 밤 할머니에게서 구형 스마트폰을 받아 궁금했던 친구들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을지 생각한다. 병원에서 안락사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찬성은 에반이 겪고 있는 고통을 생각한 후, 안락사 비용 십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전단지를 나눠 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목표한 돈을 다 모은 날 찬성은 마루에 엎드려 단순한 산수를 했다. 일주일간 전단지 오천 장 이상을 돌려 십일만 사천 원을 벌었다. 살면서 처음 만져 보는 돈이었다. 찬성은 구체적인 노동의 대가를 만지며 뜻밖에 긍지와 보람을 느꼈다. 애초 목적과 달리 예상치 못한 성취감에 살짝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날, 너무 지겨운 나머지 전단지 사십 장 정도를 남의 집 옥상에 몰래 버리고 왔지만, 그것 빼곤 정말 죄 묻지 않은 돈이었다. 찬성은 만 원짜리 열한 장과 천 원짜리 네 장을 가지런히 모아 각을 맞춘 뒤 지갑에 넣었다. 그러곤 안방으로 가 할머니 신분증을 몰래 챙겼다. 안락사 동의서를 작성할 때 어른 신분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다음 날 찬성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동물병원에 갈 차비를 했다. 할머니는 이미 휴게소로 출근하고 없었다. 마당 한쪽에 연결된 수도에 세숫대야를 놓고 찬성은 에반을 씻겼다.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양쪽 귀를 잘 잡고, 몸에 비누 거품을 묻혀 구석구석 닦았다. 그 목욕이 어떤 목욕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에반은 어린 찬성 손에 순순히 몸을 맡겼다.

─ 시원해? 에반?

혈관이 비쳐 살짝 분홍빛이 도는 에반 귀를 조심스레 문지르며 찬성이 물었다.

─ 나는 너 이런 데도 닦아 줘야 하는지 잘 몰랐어. 그래서 의사 선생님한테 좀 혼났어. 그동안 많이 답답했지?

찬성은 옷장에서 가장 단정해 보이는 옷을 꺼내 입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찬성이 차분한 얼굴로 검은색 반팔 셔츠의 단추를 잠갔다. 그러곤 지갑 속 현금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마루에 걸터앉아 운동화를 신었다. 가는 길에 일진 형들이라도 만나면 어쩌나 괜한 걱정이 들었다. 찬성이 목욕 후 털이 부풀어 보송보송해진 에반을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그러곤 에반의 목덜미를 한 번 쓰다듬은 뒤 광에서 손수레를 꺼냈다. 오래전 할머니가 졸음 쉼터에서 사용한 아이스박스 캐리어였다.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걸 고무호스로 물을 뿌려 씻어 내고, 뚜껑을 분리해 떼어 낸 뒤 안에 수건을 깔았다. 그러곤 거기 얼음 대신 에반을 넣었다. 에반 옆에 작은 물그릇과 물통을 넣는 일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기분이 무척 이상했지만, 마지막이라도 도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오늘 하루 중요한 일을 치른다는 사실에, 그리고 모든 걸 오로지 혼자 준비했다는 생각에 찬성은 경건한 긴장감을 느꼈다.

참사랑 동물병원은 아파트 단지 내 편의 시설이 밀집한 상가 건물 일 층에 있었다. 산뜻한 크림색 외벽에 통유리가 시원하게 달린 신축 병원이었다. 상호가 박힌 노란 간판엔 검정색 개 발바닥 도장이 찍혀 있어 전체적으로 다감한 인상을 풍겼다. 유리벽에 붙은 ‘살인 진드기 집중 예방 기간’이라든가 ‘강아지를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인쇄물을 보며 찬성은 왠지 모를 안정과 신뢰를 느꼈다.

─ 다 왔어, 에반.

병원에 들어서기 전 찬성이 뒤를 돌아봤다. 허리 숙여 에반과 눈을 맞추고 싶었지만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 꾹 참았다. 한 손에 손수레 손잡이를 잡은 찬성이 반대쪽 어깨에 힘을 실어 병원 유리문을 밀었다. 순간 어떤 힘이 찬성을 바깥으로 확 밀어 냈다.

─ 어?

현관 위 금속 종이 쨍그랑 소리를 냈지만 유리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찬성이 얼떨떨한 얼굴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때서야 유리문에 붙은 공지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중(喪中). 주말까지 쉽니다.’

찬성은 상중이란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죽음과 관련된 말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찬성은 묘한 안도를 느꼈다.

찬성은 상가 주위를 배회하다 인근 아파트 단지 놀이터로 갔다. 전에 전단지를 돌리며 몇 번 와 본 곳이었다. 찬성은 등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었다. 아침부터 온종일 긴장한 탓에 피로가 밀려왔다. 아이스박스 속 에반이 잠에서 깨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자신을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는 찬성의 얼굴을 흘깃댔다. 몇몇 사내아이들이 왁자지껄 찬성 앞을 지나갔다. 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저희끼리 뭐라 참견하고 장난치며 웃어댔다. 찬성이 위축된 얼굴로 그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러곤 자신의 불룩한 바지 주머니를 한 번 만진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가는 길, 찬성은 버스 정류소 근처의 휴대 전화 대리점을 지나쳤다. 찬성은 버스를 기다리다 진열장 안에 전시된 최신형 스마트폰을 구경했다. 반짝반짝 검은 보석처럼 빛나는 매끈한 기기 위로 찬성의 얼빠진 얼굴이 비쳤다. 찬성은 그것들이 진심으로 아름답다 느꼈다.

─ 이것 봐, 에반. 멋지다.

찬성이 진열장에서 시선을 돌려 아이스박스 속 에반을 바라봤다. 에반은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그 안에 자신의 머리를 묻고 죽은 듯 잠들어 있었다. 찬성은 에반을 한 번 쓰다듬은 뒤 바지 주머니에서 구형 휴대 전화를 꺼냈다. 그러곤 모서리에 살짝 금이 간 액정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보다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 그러고 보니 돈이 남네.

에반을 위해 쓸 돈을 빼고도 만 사천 원이 남는다는 사실에 찬성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집에 가는 버스가 도착했지만 찬성은 버스에 오르는 대신 휴대 전화 대리점 유리문을 열어 젖혔다.

처음엔 그냥 유심 칩 가격이나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직원 앞에 앉게 되었고, 그가 내민 서류에 또박또박 이름을 적어 넣었고, 할머니 신분증을 건네고 말았다. 찬성은 자신의 구형 휴대 전화에 유심 칩을 넣는 직원을 쳐다보다 대리점 유리문 앞에 세워 둔 손수레를 돌아보았다. 아이스박스 안에 잠들어 있을 에반은 보이지 않았지만 에반이 거기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 유심 칩 값 만 원에 충전기 오천 원. 원래 개통비 삼만 원도 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이벤트 기간이니까 무료로 해 줄게.

찬성이 자신의 휴대 전화를 돌려받으며 지갑에서 만 오천 원을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에반 병원비에서 천 원을 허는 게 조금 찝찝했지만 동물병원이 문을 닫는 기간 동안 용돈을 아끼면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 정류소 앞에서 찬성은 휴대 전화 버튼을 수없이 눌러 보았다. 실금 간 액정 위로 환한 빛이 들어오자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이 비치지 않았다. 찬성은 휴대 전화 카메라 단추를 눌러 발밑에 잠들어 있는 에반의 사진을 처음으로 찍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찬성의 등 뒤로 냉장 트럭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에반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조용히 잠만 잤다. 여느 때처럼 보채거나 끙끙대지 않고 자신의 다리를 핥지도 않았다. 찬성은 하루 종일 휴대 전화를 만지다 충전하는 동안에만 가끔 에반을 살폈다.

─ 그래, 착하다, 우리 에반.

찬성은 잠든 에반의 등을 쓰다듬은 뒤 휴대 전화를 다시 손에 쥐고 갖가지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 전화 요금 많이 나오면 다 네 용돈에서 깔 테니까 알아서 해.

할머니가 엄포를 놓아도 소용없었다. 그날 밤 찬성은 이부자리에 누워 오래전 아버지가 그런 것처럼 휴대 전화 불빛으로 개 그림자를 만들었다.

─ 에반, 이것 봐. 내가 네 친구들을 불러왔어.

찬성이 소리쳤지만 에반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 에반, 이거 보라니까. 내가 아빠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아. 진짜 개야, 진짜 개. 네 친구들이라니까.

에반은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틀 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찬성은 휴게소에 들렀다. 여름휴가 기간과 주말 연휴가 겹쳐 휴게소 안은 주차 공간이 없을 만큼 사람들로 붐볐다. 할머니는 지친 얼굴로 잔치국수가 담긴 쟁반을 들고 찬성에게 다가왔다.

─ 점심 다른 거 사 먹는다고 돈으로 달라 하더니.
─ 아, 그거. 이제 됐어, 할머니.
─ 되다니, 뭐가?
─ 어제 받은 걸로 해결됐다고.
─ 그러니까 뭐가 해결됐냐고?
─ 있어, 그런 게. 얼른 국수나 줘.

찬성이 호로록 국수를 삼키며 주방 안쪽에서 설거지하는 할머니 뒷모습을 지켜봤다. 할머니가 허리를 굽혔다 펼 때마다 허리춤 사이로 찬성이 전날 밤 붙여 준 하얀 파스가 보였다 사라졌다. 찬성은 식기 반납함에 쟁반을 갖다 놓고 주유소 옆 등나무 벤치로 가 스마트폰을 갖고 놀았다. 자신이 스마트폰 만지는 걸 많은 이들이 봐 주길 바랐지만 사람들은 찬성을 신경 쓰지 않았다.

주말 인파에 섞여 찬성은 스마트폰으로 「○○메카드」를 보고 또 봤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지난 사흘 동안 누군가와 통화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찬성이 아는 번호도, 찬성 번호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교무실에 전화 걸어 반 친구들 연락처를 물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선생님과 통화해야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아빠가 살아 계셨으면 아빠한테 걸었을 텐데.’

오랜 궁리 끝에 찬성이 지갑에서 동물병원 명함을 꺼내 들었다. 상중이라 주말까지 쉰다는 말이 생각났지만 찬성은 괜히 한번 병원 전화번호를 눌러 보았다. 몇 차례 긴 연결음이 이어졌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찬성은 동물병원 쪽에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이상한 안도를 느꼈다. 찬성이 지갑 안에 명함을 넣으며 남은 돈을 세어 보았다. 십만 삼천 원. 에반을 병원에 데려가기에 부족하지 않은 액수였다. 오늘만 지나면, 그러면…… 꼭 다짐하며 일어서는데 찬성 무릎 위의 휴대 전화가 아스팔트 보도 위로 툭 떨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 찬성은 한 손을 길게 뻗어 휴대 전화를 좌우로 틀며 햇빛에 비춰 봤다. 검은 액정 표면에 닿은 빛이 물에 뜬 기름처럼 매끈하게 일렁였다. 더불어 찬성의 가슴에도 작은 만족감이 일었다. 액정에 보호 필름을 붙이니 왠지 기계도 새것처럼 보이고, 모서리 쪽 상처도 눈에 덜 띄는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조금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변명했다. 찬성은 티끌 하나 없이 투명한 보호 필름을 만지며 자기도 모르게 “…… 사흘.” 하고 중얼댔다. 그러니까 사흘 정도는 에반이 기다려 주지 않을까 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갑 안의 돈이 어느새 구만 오천 원으로 줄어 있었다.

에반이 구슬피 울기 시작한 건 그날 밤이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이상했다. 에반은 하늘을 보며 늑대처럼 긴 울음을 토해 냈다. 자다 깜짝 놀란 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에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에반이 저항하며 방바닥에 머리를 짓이겼다. 자세히 보니 눈 주위에 눈곱이 덕지덕지 끼고 입에서도 심한 악취가 났다.

할머니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찬성이 에반 대신 목소리를 낮췄다.

─ 에반, 미안해. 우리 사흘만 참자. 딱 사흘만. 그때는 형이 꼭…… 착하지? 조금만 참아, 조금만…….

이틀이 지났다. 찬성은 이상한 기척에 잠에서 깼다. 게슴츠레 눈을 떠 보니 에반이 자신의 뺨을 핥고 있었다. 두 발을 찬성의 가슴팍에 올리고 마치 작별 인사라도 하는 양 찬성 얼굴에 자기 머리를 비볐다. 에반이 꼬리를 흔들고 배를 보일 때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찬성은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 했다. 요즘 계속 잠만 자더니 갑자기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걸까. 혹시 기적적으로 상태가 조금 나아진 걸까. 이렇게 아주 조금씩 좋아지다 보면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가슴속의 부질없는 희망이 컵에 담긴 물마냥 출렁였다. 에반은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는지 찬성 옆구리에 머리를 깊숙이 파묻었다. 찬성이 어둠 속에서 잠 묻은 말투로 “그래, 그래.” 하고 속삭였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찬성은 서둘러 시내에 갔다. 오늘 아예 직접 병원에 들러 안락사 동의서를 쓰고 예약까지 하고 올 생각이었다. 그러면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돈을 헐어 쓰는 일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물병원에 도착하기 전, 찬성은 대형 문구점 앞을 지나다 걸음을 멈췄다. 알록달록 여러 종류의 휴대 전화 케이스가 걸린 진열대에서 「○○메카드」 캐릭터가 그려진 상품을 발견하고서였다. 무심코 가격을 살펴보니 삼만 사천 원이나 했다. 순간 찬성의 머릿속에 전에 없던 의심이 피어났다. 어쩌면 안락사에 대해 자신이 처음부터 잘못 생각한 게 아닐까 하는. 에반의 죽음을 거드는 것보다 에반이 살아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게 우리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찬성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어느새 찬성 손에는 육만 칠천 원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게 합당하고 필요한 과정처럼 여겨졌는데 이상했다. 찬성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오늘따라 유난히 길게 늘어선 듯한 논둑길을 휘적휘적 혼자 걸었다. 다시 십만 원을 채우려면 전단지 이천 장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이천 장이라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찬성은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휴게소 식품 코너에 들러 에반에게 줄 핫바를 샀다. 기름 냄새를 맡으니 허기가 밀려왔지만 참았다. 찬성은 핫바가 든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터덜터덜 사십 분을 걸어 집에 왔다. 모든 불이 꺼진 탓에 집 안이 평소보다 더 어두워 보였다.

─ 에반! 형이 간식 사 왔어. 이리 와 봐. 네가 좋아하는 핫바야.

에반이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찬성이 작은방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런데 거기 에반이 없었다.

찬성은 휴대 전화 손전등 기능을 켠 채 한 발 한 발 수색 범위를 넓혔다. 에반은 작은 개라 발밑을 잘 살펴야 했다. 논바닥에 주저앉아 당장 울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찬성이 걸음을 재촉했다. 일단 에반을 찾는 게 먼저였다.

찬성이 멀리 불 켜진 고속 도로 휴게소를 바라봤다. 자신도 왜 그곳까지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시간에 갈 수 있는 데가 거기밖에 없어 그랬는지 몰랐다. 아니면 덜컥 겁이 나 할머니가 보고 싶었는지도. 그런데 주유소 앞을 지날 즈음 문득 불길한 느낌에 휩싸이고 말았다. 거기 주유소 쓰레기통 옆에 눈에 익은 자루 하나가 보여서였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자루 아래가 불룩했고 입구는 노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찬성이 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안고 그 앞을 못 본 척 지나갔다. 자루 아래로 선홍색 피가 천천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찬성은 전에 비슷한 걸 본 적 있었다. 고속 도로 갓길에 쓰러진 동료를 웬 들개 무리가 지키고 선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운전석에서 전조등을 몇 번 깜빡여도 죽은 동료를 에워싼 채 이쪽을 쏘아보던 들개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 그렇지만 우리 개는 유기견이 아니니까.’

찬성은 꽤 오랫동안 그 자루 앞에 서 있었다. 몇 번 ‘노끈을 풀어 볼까?’라는 충동이 일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루 아래로 방금 전보다 더 많은 양의 피가 새어 나왔다. 만지면 아직 따뜻할 것 같은 피였다. 이윽고 찬성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자루에 든 게 뭔지 끝내 확인하지 않고, 그때까지 오른손에 꽉 쥐고 있던 휴대 전화를 든 채 자리를 떴다.

주위는 더 어두워졌다. 찬성이 뻣뻣하게 굳은 몸을 이끌고 고속 도로 옆 비포장길을 걸어 나갔다. 몇몇 차들이 시끄러운 경적을 울리며 찬성 옆을 휙휙 지나갔다. 찬성이 고개 숙여 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휴대 전화 손전등 기능을 너무 오래 사용한 탓에 기기에서 열이 났다. 손바닥에 고인 땀을 보니 문득 에반을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손바닥 위 반짝이던 얼음과 부드럽고 차가운 듯 뜨뜻미지근하며 간질거리던 무엇인가가. 그렇지만 이제 다시는 만질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옥죄었다. 하지만 당장 그것의 이름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라 찬성은 어둠 속 갓길을 마냥 걸었다. 대형 화물 트럭 몇 대가 시끄러운 경적을 울리며 찬성 옆을 사납게 지나갔다. 머릿속에 난데없이 ‘용서’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찬성이 선 데가 길이 아닌 살얼음판이라도 되는 양 어디선가 쩍쩍 금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핵심 내용 정리

「노찬성과 에반」은 아버지를 잃고 할머니와 사는 열두 살 이 휴게소에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와 이라 이름 붙이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에반이 암에 걸리자 찬성은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려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십일만 사천 원을 번다. 그러나 동물병원이 상중으로 문을 닫자 찬성은 ‘묘한 안도’를 느끼고, 또래 아이들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 때문에 휴대 전화 개통·액정 보호 필름·휴대 전화 케이스에 돈을 쓰기 시작한다. 이때 찬성의 중심 갈등은 에반의 보호자로서 느끼는 과 또래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의 충돌이다. 찬성은 자신의 선택을 계속 합리화하지만, 에반이 사라지고 피가 밴 자루를 보면서 상실과 죄책감에 직면한다. 결말에서 떠오르는 는 찬성이 아직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말이며, 작품은 책임의 한계와 용서의 가능성을 독자에게 열린 질문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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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개관

갈래 현대 소설 · 단편 소설
성격 현실적 · 감성적 · 성찰적
서술 시점 3인칭 전지적 서술자 시점 — 작품 밖 서술자가 찬성의 행동과 내면 심리를 직접 제시함.
핵심 갈등 에반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과 휴대 전화 관련 소비 욕구 사이의 내적 갈등
주제 관계와 생명에 대한 책임, 욕망과 상실, 죄책감과 용서에 대한 성찰

사건 전개와 찬성의 심리

장면 사건 찬성의 심리
아르바이트 에반의 안락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단지를 배포하고 11만 4천 원을 모음. 긍지 · 보람 · 성취감
동물병원 ‘상중’으로 병원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함. 긴장 → 당혹 → 묘한 안도
휴대 전화 개통 유심 칩과 충전기에 돈을 씀. 설렘 · 만족감 + 찝찝함
액정 보호 필름 병원비 일부를 다시 사용함. 당혹 → 만족 → 실망 → 자기 합리화
휴대 전화 케이스 3만 4천 원을 더 사용하며 안락사의 의미를 의심함. 의심 · 합리화 → 근심 · 막막함
에반의 부재 집에서 에반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됨. 불안 · 두려움 · 초조함
눈에 익은 자루 에반이 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자루를 보고도 열지 못함. 두려움 · 상실감 · 죄책감
결말 갓길을 걸으며 ‘용서’라는 말을 떠올림. 책임에 대한 자각과 감당하기 어려운 죄책감

핵심 소재

휴대 전화

또래와 연결되고 싶은 찬성의 욕망과 소외감을 드러낸다. 개통 이후 찬성의 관심이 에반에서 휴대 전화로 이동하며 보호자로서의 책임이 흔들리는 과정을 보여 준다.

안락사 비용

에반에 대한 찬성의 책임을 돈의 형태로 구체화한다. 돈이 11만 4천 원에서 10만 3천 원, 9만 5천 원, 6만 7천 원으로 줄어드는 과정은 책임감이 욕망에 밀려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 준다.

냉장 트럭

찬성이 에반의 사진을 처음 찍는 순간 등 뒤로 지나가며 불길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자동차와 연결된 앞선 비극을 환기하고 이후 에반에게 닥칠 일을 예고하는 기능을 한다.

눈에 익은 자루

에반의 죽음을 직접 확정하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비극을 짐작하게 하는 소재이다. 찬성이 자루를 열지 못하는 행동은 두려움, 상실의 부정, 죄책감을 동시에 드러낸다.

‘용서’

결말에서 찬성의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이다. 누가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지 명확히 닫지 않음으로써 책임과 용서의 문제를 독자에게 남긴다.

이 작품이 보여 주는 사회 문제

작품은 찬성 개인의 잘못만을 다루지 않는다. 보호받아야 할 어린 청소년의 돌봄 공백, 가난과 노동, 경제적 불평등, 동물 유기와 동물권, 병든 동물의 안락사를 둘러싼 윤리 문제, 충분한 보호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한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이 주어지는 문제를 함께 드러낸다. 따라서 찬성을 단순히 ‘착한 아이/나쁜 아이’로 나누기보다는 그가 놓인 조건과 선택, 그 결과를 함께 보아야 한다.

시험 출제 포인트 20

  1. 작품의 중심 인물은 열두 살 초등학생 노찬성이다.
  2. 찬성과 에반은 서로 의지하는 관계이다.
  3. 에반은 휴게소에 버려진 늙은 개이며 암에 걸려 있다.
  4. 찬성은 에반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안락사를 생각한다.
  5. 찬성은 안락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한다.
  6. 찬성이 모은 돈은 11만 4천 원이다.
  7. 동물병원이 문을 닫은 이유는 ‘상중’이기 때문이다.
  8. 병원이 닫혀 있음을 확인한 찬성은 ‘묘한 안도’를 느낀다.
  9. 구형 휴대 전화는 찬성의 소외감과 또래 세계에 대한 욕망을 보여 준다.
  10. 찬성의 중심 갈등은 보호 책임과 소비 욕구 사이의 내적 갈등이다.
  11. 찬성은 소비할 때마다 자신의 행동을 자기 합리화한다.
  12. 액정 보호 필름을 산 뒤 찬성은 에반에게 ‘사흘’만 참아 달라고 한다.
  13. 휴대 전화 케이스 구매 뒤 남은 돈은 6만 7천 원이다.
  14. 에반이 찬성의 뺨을 핥는 장면은 둘의 마지막 교류처럼 제시된다.
  15. 냉장 트럭은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후 비극을 예고한다.
  16. 에반이 사라진 뒤 찬성은 불안·두려움·초조함을 느낀다.
  17. 찬성은 피가 새는 자루를 보고도 끝내 열지 않는다.
  18. 에반의 죽음을 직접 확정하지 않아 열린 결말의 성격을 갖는다.
  19. 결말에서 찬성의 머릿속에 ‘용서’라는 말이 떠오른다.
  20. 작품은 돌봄의 사각지대, 빈곤·노동, 동물 유기와 동물권 등의 사회 문제를 개인과 가족의 서사로 보여 준다.

단답형 핵심 확인 10

1. 이 작품의 서술 시점을 쓰시오.

정답

3인칭 전지적 서술자 시점

2. 찬성이 에반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선택하려 한 방법은?

정답

안락사

3. 안락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찬성이 한 일은?

정답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

4. 동물병원이 문을 닫은 이유를 나타내는 단어는?

정답

상중

5. 병원이 닫힌 것을 본 찬성이 느낀 감정은?

정답

묘한 안도

6. 찬성의 핵심 내적 갈등을 이루는 두 요소는?

정답

에반에 대한 책임감과 휴대 전화 관련 소비 욕구

7. 에반의 사진을 처음 찍는 순간 지나가는 불길한 소재는?

정답

냉장 트럭

8. 에반의 죽음을 암시하는 결말부의 핵심 소재는?

정답

눈에 익은 자루

9. 에반의 죽음을 직접 확정하지 않는 결말 방식을 무엇이라 하는가?

정답

열린 결말

10. 결말에서 찬성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정답

용서

실전 객관식 10문항

1. 이 작품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 ‘상중. 주말까지 쉽니다.’라는 공지문을 본 찬성의 반응을 이해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 휴대 전화의 기능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4. 다음 중 찬성의 내적 갈등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 것은?

5. ‘냉장 트럭’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6. 휴대 전화 케이스를 산 뒤 찬성의 심리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7. 에반이 사라진 뒤 찬성이 자루를 열지 못하는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8. 결말의 ‘용서’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9. 이 작품에 반영된 사회 문제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0.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로 가장 적절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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