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수능특강 문학 · 3부 실전 학습 1회 · [11~14] 현대 소설
최일남 「너무 큰 나무」
수능특강 314~316쪽 실제 수록 대목과 EBS 해제·해설을 기준으로, 식모 ‘나’의 시선이 드러내는 김 박사의 표리부동함과 제목의 의미를 정리합니다.
1. 수능특강 수록 제시문 전문
“네, 그렇습니다만⋯⋯.”
나도 어느 겨를에 전화 받는 태도가 점잖아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디서 함부로 김 박사를 찾느냐는 투로 꼬리를 달았다. 먼저 당신의 관등성명을 대고 김 박사를 찾을 일이지 어디서 함부로 뉘 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 김 박사 김 박사 하느냐는 투로 한껏 말소리를 낮추어서 점잖게 대했다. 그런 나 자신이 속으로는 히히히 웃음이 나왔지만, 제기, 알 게 뭐야, 덕분에 나도 올라가 보자 하는 생각이 그럴 때마다 들던 것이다.
“계시면 좀 바꿔 주십시오.”
“누구신데요.”
(덮어놓고 바꿔 달라니 어디서 함부로.)
“아, 나 이XX라는 사람입니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내가 금방 바꿔 줄 줄 알고? 이 대목에서 혀를 날름.)
그런데 여기서 꼭 산통이 깨진다. 내가 그쯤 상대를 해 놓았으면 아저씨는 잠자코 있다가 어디 사는 아무개 씨한테서 전화 왔어요 하면, 오냐 그러니⋯⋯,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건데, 아저씨는 내가 전화를 받고 미처 대답도 다 하기 전에,
“나니? 나한테 온 전화지?” 하고는 채신머리없이(실례) 덤비는 것이다. 기껏 내가 꾸며 준 무드를 왕창 깨어 버리는 것이다. 좀 남이 알아주는 점잖은 양반답게 알고도 모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있으면 좋으련만 전화벨만 울리면 벌써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고 엉덩이를 들먹들먹, 이쪽 눈치를 힐끗힐끗 도무지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
하지만 염려할 건 없다. 전화를 받을 때까지는 그렇지만, 일단 수화기를 들었다 하면 그렇게 목소리가 의젓하고 점잖을 수가 없으니까. <영등포의 밤>을 부른 어떤 가수처럼 저음으로 점잖게 나오니까.
“네, 전화 바꿨습니다.”
의젓하게 운을 떼고는 어느새 얼굴까지가 근엄해진다.
“아아, 이 선생이시오? 이거 적조했소이다. 집안도 다 무고하시고.”
잘 나간다. 그러다가 웃는다.
“핫 핫 핫 핫, 원 별말씀을.”
‘핫’ 소리 하나에 꼭 일 초는 걸릴 만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높지도 낮지도 않게 웃는다. 극장이나 텔레비전에서 배우들이 꾸며 대서 웃는 소리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정확한 간격으로 웃는다. 이를테면 새벽녘에 아직 잠자리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고 치자. 우리 같으면 어쩌면 짜증도 나고 해서 반은 덜 깬 목소리로 더듬더듬 씨불일 것인데, 아저씨는 그렇지가 않다. 방금 잠에서 깨어난 사람 같지 않게 어쩌면 그렇게 말도 의젓하고 또릿또릿한지 참 희한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요컨대 우리 아저씨는 남을 대할 때와 흉허물 없는 식구를 대할 때의 태도가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식구들을 대할 때는 물론 심지어 나에게까지도 툭 터놓고 지나다가도, 일단 상대가 바깥 사람이 되고 보면 칼로 벤 듯이 싹 태도가 달라진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 아저씨의 허물을 고자질하는 것 같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우리 아저씨에게는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느 때던가 식구들이 다 나가고, 별로 할 일도 없어서 헌 잡지를 뒤적이자니까, 아저씨의 사진이 커다랗게 나와 있고 곁들여 아저씨의 긴 글이 적혀 있었다. 다행히 그 잡지의 내용이 한글로 되어 있어서 아저씨의 글을 따라 읽던 나는, 이게 아닌데 하는 스스로의 의문을 풀지 못했다. 아저씨가 쓴 글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 내용을 전부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그 요점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무엇이었던고 하니, 그 글의 골자는,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자면은 서로 입장을 바꾸어서 이해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우선 피차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정에서부터, 특히 부모와 자식 간에 흉허물 없이 툭 터놓고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인즉슨 그럴 듯도 한데, 내가 보기에 우리 아저씨가 식구들과 툭 터놓고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나는 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내 아둔한 생각으로도 글이라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남에게 바르게 전하는 것이고, 그러자면 우선 자기 자신의 생활이 거기에 걸맞아야 하는 것일 텐데, 대화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우리 아저씨는 과연 집안에서 그런 일을 어쩌다가라도 가진 일이 있었던가. 없다 이거다. 물론 간간이 아저씨가 식구들과 얘기를 나누는 적은 있지만, 그것은 꼭 필요한 말 아니면 잔심부름 따위를 시킬 때뿐이지 아주머니나 아이들을 앉혀 놓고 초곤초곤 얘기를 하는 일을 별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이 집 식구들은 제각기 사업에 바빠서 서로 들고 나는 시간이 엇바뀌는 바람에 일동 집합하는 식으로는 도저히 안 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온 집안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서 얘기를 나눈다든가, 유식한 말로 대화를 나눈다든가 하는 시간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아저씨가 사람과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그리고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는 대화가 제일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무슨 뜻인지, 엥이 참.
(중략)
얘기가 나온 김에 또 한 가지 털어놓아야겠다. 직접 나에게 관계되는 일이 되어서 좀 거북하지만 어떠랴 싶다. 다름이 아니라 내 월급 얘기다. 장난감 사장 집에 있는 옆집 심순이는 심심찮게 월급이 야곰야곰 오르는데, 우리 집은 내가 내 입으로 꺼내기 전에는 도통 아무도 신경을 써 주지 않는다. 솔직히 얘기해서 우리네는 인간적인 대우도 대우지만, 때가 되면 조금씩이라도 월급이 오르는 것을 깨소금 맛으로 알고 붙어 사는 건데, 우리 집 아저씨나 아주머니는 한 번도 자진해서 이 얘기를 꺼낸 적이 없으니 뿔따구가 날 밖에. 그래서 어느 날인가는 아주머니더러 알아들으라고 대놓고 말했다. 물론 정면으로 얘기한 것은 아니고 심순이의 예를 들어서 엇비슷이 빗대 놓고 말이다.
“옆집 심순이 있잖아요, 걔는 이번 달부터 월급이 오천 원씩 더 오른다나요.”
“그래 너도 그만큼 올려 달라 이 말이냐?”
“꼭 그렇다기보담두⋯⋯.”
“아니긴 뭐가 아냐. 요구를 할 양이면 정정당당히 얘기를 할 것이지 왜 숭물스럽게 심순이는 갖다 붙이니.”
“아주머니도. 왜 제가 숭물스러워요?”
“시끄럽다. 그건 그렇고 그 집은 장사하는 집이니까 돈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이 어디 부자니? 그러니 조금만 참아라.”
참아라. 참아라. 나는 아주머니에게 얼마나 많이 이 말을 들어 온지 모른다.
그날 밤이었을까. 나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앉아 있는 응접실로 커피를 나르러 갔다가 우연히 두 분이 내 월급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귀담아들었다. 두 분은 내가 들어가자 하던 얘기를 뚝 그쳤는데, 이미 내가 들어가면서 들은 얘기는 분명히 이랬다. 아저씨의 말이었다.
“잘 달래서 따둑거리라구. 그리고 당신도 그렇지, 나처럼 바쁜 몸이 식모 월급까지 신경 쓰게 됐어?”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끼면서 하마터면 쟁반 위의 커피를 엎지를 뻔했다. 서운했다. 정말 서운했다. 물론 아저씨처럼 큰일을 하는 분이 나 같은 것의 월급에 참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아저씨의 바깥에서의 말이나 행동으로 견주어 봐서, 다만 말로라도 그렇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거 좀 올려 주지 그래’ 이 말 한마디만 했더라도 내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서운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집에서도 우리 같은 애들의 월급은 대개 아주머니들이 정하고 바깥양반들은 쟤가 얼마를 받고 있는지 우리 같은 애들의 가슴에서 국이 끓고 있는지 밥이 끓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보통이고 또 그래서 나쁜 것이 없지만, 일단 얘기가 나오거나 아내의 상의를 받으면 그래도 다소는 호의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도량 있는 남자가 할 짓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 아저씨는 안 그랬다.
그런 다음 날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갈비짝이다 비단이다를 한 짐 잔뜩 차에 싣고는 어디론지 핑 나갔다.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모르지만 필경 아저씨보다도 더 높은 분에게 가는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내외분은 그전에도 명절 때만 되면, 아니 비단 명절 때가 아니라도 수시로 선물을 싸 들고 어디론가 찾아가는 것을 보았으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아저씨만큼 세상에 알려질 만큼 알려진 높은 분이 또 딴 사람에게 교제할 리는 없고 어째서 그런 것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했다.
나는 사람들이 걸핏하면 놀란 토끼처럼 허리를 칠십 도로 구부리고, 후딱 하면 텔레비전에 나와서 의젓한 자세로 얘기를 하고 걸려 오는 전화마다 받들어 모시듯 하는 우리 아저씨 같은 분을 가까이서 모시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기는 하다. 기왕이면 그런 집에 있는 것이 한 가지라도 더 배우고 보는 것이 더 많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아름답던 산도 막상 그 속에 들어가 보면 뭐가 뭔지 천방지축으로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를 모르듯이, 나도 너무 아저씨의 곁에 가까이 있어서 어떤 때는 무엇이 아저씨의 정체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오히려 좋은 점보다는 헬렐레한 구석이 더 자주 눈에 띄어서, 속으로 이 맹추야 너는 사람 볼 줄도 모르니 하고 스스로의 살을 꼬집는 때가 많다.
어려서의 경험이지만, 나는 우리 동네에서 십 리가량 떨어진 천방산이 먼 데서 볼 때에는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허지만 동네 아주머니들이랑 패거리를 지어서 막상 그 산속에 들어가 고사리며 취나물을 캐다 보면 우리 뒷동산이나 별다른 것이 없었다.
지금의 내가 그럴까.
큰 나무의 바로 밑동에 서서 보면 그 나무의 꼭대기가 안 보이듯이 지금의 내가 그럴까.
아, 모르겠다. 아, 모르겠다.
– 최일남, 「너무 큰 나무」
수능특강 314~316쪽의 실제 제시문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교재 문제 풀이를 위해 붙은 ㉠~㉤, ⓐ 표시는 작품 자체의 표지가 아니므로 제거했으며, 작품 안의 괄호 독백과 EBS가 제시한 (중략)은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2. 핵심 내용
| 갈래 | 현대 소설 · 풍자 소설 |
|---|---|
| 서술자 | 김 박사 집의 식모인 1인칭 서술자 ‘나’ |
| EBS 주제 | 지식인의 표리부동한 모습에 대한 풍자 |
| 비판 대상 | 공적인 말과 사회적 이미지에 비해 사적인 생활에서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일부 지식인·사회 지도층 |
| 핵심 장면 | 전화 전후의 태도 변화 → 잡지 글의 ‘대화’ 주장과 실제 가정생활의 괴리 → 식모 월급에 대한 무관심 → 윗사람에게 가져가는 선물 → 천방산·큰 나무의 비유 |
김 박사는 모 연구소 소장으로 민족과 국가에 관한 강연, 방송 출연, 신문 기고 등으로 알려진 유명 인사이다. EBS 해제는 전화 태도, 글과 생활의 불일치, 가족 관계, 술주정, 식모 월급에 대한 인색함 등을 통해 그의 이중성이 폭로된다고 설명한다.
3. 상세 해설 15
서술자는 김 박사 집에서 일하는 식모이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바는 직접 제시하지만 김 박사의 속마음은 알 수 없다. 이 제한성 때문에 독자는 김 박사의 행동과 공적 이미지의 간극을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나’는 전화를 건 사람이 김 박사를 함부로 부른다고 여기며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점잖게 응대한다. 주인집의 사회적 지위를 자기 위신처럼 느끼는 순박한 허영과 익살이 함께 나타난다.
“덮어놓고 바꿔 달라니”와 “내가 금방 바꿔 줄 줄 알고?” 같은 괄호 속 말은 ‘나’의 속마음을 직접 노출한다. 실제 발화와 내면 반응의 차이를 보여 주어 1인칭 서술의 생동감과 풍자성을 높인다.
전화가 오기 전에는 엉덩이를 들먹이고 눈치를 살피지만 수화기를 들면 곧바로 저음의 의젓한 목소리와 근엄한 표정을 갖춘다. 바깥사람 앞에서 사회적 체면을 연출하는 모습이 희화화된다.
웃음의 간격을 “꼭 일 초”라고 묘사하고 배우의 꾸민 웃음과 비교한다.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보다 정해진 사회적 역할을 연기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김 박사의 작위성을 부각한다.
‘나’는 김 박사가 바깥사람을 대하면 “칼로 벤 듯이” 태도가 달라진다고 관찰한다. 공적인 근엄함과 사적인 일상 사이의 간극은 작품 전체의 표리부동 비판을 압축한다.
김 박사는 글에서 부모와 자식이 흉허물 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가 본 가정에서는 필요한 말이나 심부름 지시 외에 진정한 대화가 거의 없다. 주장과 실천의 불일치가 직접 드러난다.
‘나’는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자신을 낮추면서도, 글쓴이의 실제 삶이 그 주장과 맞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이 단순하고 생활적인 기준이 오히려 지식인의 위선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수능특강 제시문 자체에 (중략)이 들어 있다. EBS 전체 줄거리는 이 중략 부분 밖에서도 독서에 관한 주장과 평소 태도, 가족 관계, 술주정 등 여러 불일치가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게시 제시문에서는 EBS가 제시한 (중략)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
앞부분의 모순이 관찰의 대상이었다면 월급 문제는 ‘나’ 자신의 처우와 직결된다. 그래서 ‘나’의 비판은 추상적인 인상에서 구체적인 서운함과 실망으로 깊어진다.
이 말은 김 박사의 주장이 아니라 식모인 ‘나’의 생각이다. ‘나’는 인간적 대우와 함께 정당한 임금 인상을 현실적인 삶의 조건으로 본다. 이를 김 박사의 공적 발언으로 읽으면 인물 관계를 잘못 파악하게 된다.
아주머니는 ‘나’의 간접적인 요구 방식을 꾸짖고 월급 인상에는 집이 부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댄다. 이후 갈비와 비단을 싣고 더 높은 사람을 찾아가는 장면과 이어지면서 가정 내부의 인색함과 외부 관계의 지출이 대비된다.
이 말은 ‘나’를 따뜻하게 배려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임금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기보다 아내에게 적당히 달래 넘기라고 맡기는 태도이며, 이어지는 “바쁜 몸이 식모 월급까지”라는 말과 함께 거리감과 무관심을 보여 준다.
김 박사 부부는 ‘나’의 월급에는 인색하면서 더 높은 사람으로 짐작되는 대상에게는 수시로 선물을 가져간다. ‘나’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독자는 이를 통해 사회적 위계와 관계에 민감한 속물적 면모를 추론할 수 있다.
멀리서 아름답던 천방산이 가까이서는 평범했던 경험과, 큰 나무의 밑동에서는 꼭대기를 볼 수 없다는 비유가 연속된다. ‘나’는 김 박사를 가까이서 보기 때문에 오히려 전체를 판단하지 못하는 것인지 되묻고 “아, 모르겠다”를 반복한다. 제목은 이 판단의 역설과 연결된다.
4. 출제 포인트 15
- 1인칭 서술자 ‘나’는 자신의 심리에는 직접 접근하지만 김 박사의 내면에는 제한적으로 접근한다.
- 순박한 식모의 생활 언어가 사회적 권위를 가진 지식인을 아래에서 바라보는 풍자 시선을 만든다.
- 전화 응대에서 ‘나’도 주인집의 위신을 빌려 점잖음을 연출한다.
- 김 박사는 통화 전의 조급한 몸짓과 통화 중의 의젓한 태도가 선명하게 대비된다.
- 규칙적인 “핫 핫 핫 핫”은 배우의 연기처럼 보이는 작위성을 부각한다.
- 가족과 바깥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공적 이미지와 사적 생활의 괴리를 드러낸다.
- 잡지에서 가족 간 대화를 강조한 주장과 실제 가정생활의 불일치가 표리부동함을 구체화한다.
- ‘생활이 글에 걸맞아야 한다’는 ‘나’의 상식적 판단이 김 박사 비판의 기준이 된다.
- 수능특강 제시문에는 실제 (중략)이 있으므로 해당 연결 표시는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
- 월급 문제는 사회적 담론과 가까운 약자에 대한 실제 태도 사이의 간극을 직접 드러낸다.
- “인간적인 대우도 대우지만”은 김 박사가 아니라 식모 ‘나’의 생각이라는 점을 구별해야 한다.
- “잘 달래서 따둑거리라구”를 따뜻한 배려로 해석하면 EBS의 핵심 비판과 어긋난다.
- 월급에는 인색하면서 윗사람에게 선물을 가져가는 모습은 위계 지향적 속물성을 암시한다.
- ‘나’는 김 박사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유명 인사를 모신다는 자부심도 함께 지닌다.
- 천방산과 큰 나무의 비유, “아, 모르겠다”의 반복은 가까운 거리에서 전체를 판단하기 어려운 혼란을 형상화한다.
5. 자체 제작 수능형 변형문제 10제
EBS의 실제 11~14번 발문·선택지를 옮기지 않고, 수록 제시문과 EBS 해제·주제 범위 안에서 새로 구성한 문제입니다. 각 문항은 선택지를 누르면 정답과 5개 선택지별 해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① 1인칭 관찰자인 ‘나’는 김 박사의 내면을 전부 알 수 없으므로 동기를 확정하지 않는다.
- ② 작품은 여러 가족 구성원의 내면을 동등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 ③ 정답. 가까이서 일상을 보는 식모의 시선이 공적 명성과 실제 생활의 간극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 ④ 서술은 공식 기록체가 아니라 구어적이고 주관적인 생활 관찰의 성격이 강하다.
- ⑤ ‘나’는 김 박사의 말과 행동을 대조하며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 ① 김 박사는 전화가 오면 오히려 신경을 곤두세우며 자신에게 온 전화인지 궁금해한다.
- ② 작품은 가족과 외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다르다고 명시한다.
- ③ 통화에서는 오히려 근엄하고 점잖은 사회적 태도를 취한다.
- ④ 통화 전에는 엉덩이를 들먹이고 눈치를 살피므로 동일한 태도가 아니다.
- ⑤ 정답. 통화 전후의 급격한 태도 변화가 공적 이미지의 연출성과 표리부동함을 드러낸다.
- ① ‘나’는 실제로 가족 간 진솔한 대화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 ② 정답. 대화를 강조하는 글과 실제 가정생활의 괴리가 김 박사의 표리부동함을 구체화한다.
- ③ ‘나’는 글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도 생활과 글의 불일치를 포착한다.
- ④ 가족이 바쁘다는 사정은 제시되지만 그 때문에 공적 주장과 생활의 모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⑤ 김 박사는 자신의 바쁜 몸이 식모 월급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고 말한다.
- ① ‘나’는 “인간적인 대우도 대우지만”이라고 하여 인간적 대우와 임금 모두를 중요하게 본다.
- ② 아주머니는 요구 방식을 꾸짖고 “조금만 참아라”라고 한다.
- ③ 김 박사는 “바쁜 몸이 식모 월급까지”라고 말해 오히려 무관심을 드러낸다.
- ④ 정답. 사회적 명성과 공적 언행이 가장 가까운 약자에 대한 실제 배려로 이어지지 않는 모순이 드러난다.
- ⑤ ‘나’는 다른 집도 월급을 대개 아주머니가 정한다고 하므로 모든 가장이 관심이 많다고 하지 않는다.
- ① 정답. ‘나’의 추측은 제한적이지만 EBS 해제의 속물적 근성 비판과 연결해 위계적 관계 중시를 읽을 수 있다.
- ② 제시문은 선물의 대상이 가난한 이웃이라고 하지 않는다.
- ③ 선물은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월급 문제의 해결책도 아니다.
- ④ 외출의 목적을 가족 대화 실천으로 볼 근거가 없다.
- ⑤ 수시로 더 높은 사람을 찾아가는 것으로 추정되므로 사회적 관계를 거부하는 태도와 반대다.
- ① ‘나’는 가까이서 오히려 헬렐레한 구석을 보며 판단에 혼란을 느낀다.
- ② 비유의 핵심은 자연주의적 삶이 아니라 거리와 판단의 관계다.
- ③ 정답. 천방산과 큰 나무는 가까운 관찰이 전체 파악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역설을 형상화한다.
- ④ 천방산 경험은 아름다움에 대한 거리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예이며 길을 잃은 사건이 아니다.
- ⑤ 결말의 “아, 모르겠다”는 완전한 확정이 아니라 판단의 난감함을 보여 준다.
- ① 이어지는 발언은 김 박사가 월급 문제에 직접 관여하려 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 ② 그는 오히려 아내에게 맡기고 자신의 바쁨을 내세운다.
- ③ 이 대목은 잡지에서 강조한 대화의 실천과 거리가 멀다.
- ④ 생활 형편을 알아보겠다는 내용은 제시되지 않는다.
- ⑤ 정답. EBS 14번의 오답 선지가 이 말을 따뜻한 마음씨로 읽는 해석을 비판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 ① 1인칭 서술자는 다른 인물의 내면을 자유롭게 알 수 없다.
- ② 정답. EBS 11번의 핵심은 1인칭이 자신의 심리는 직접 제시하되 다른 인물은 제한된 정보만 제시한다는 점이다.
- ③ ‘나’는 “서운했다. 정말 서운했다”처럼 자신의 감정을 직접 밝힌다.
- ④ 오히려 식모이기 때문에 집 안의 일상을 가까이서 관찰한다.
- ⑤ 미래 사건을 전지적으로 예고하는 서술은 나타나지 않는다.
- ① ‘나’는 김 박사 집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 ② 가까이서 본 ‘헬렐레한 구석’ 때문에 그의 정체를 의심한다.
- ③ ‘나’는 그의 전체를 단정하지 못하고 마지막에 “모르겠다”고 한다.
- ④ 정답. 존경과 자부심, 실망과 혼란이 공존하는 양가적 태도가 풍자를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생활 관찰로 만든다.
- ⑤ 결말까지 의문이 해소되지 않으며 집을 떠나는 장면도 제시되지 않는다.
- ① 정답. EBS가 제시한 주제는 “지식인의 표리부동한 모습에 대한 풍자”이다.
- ② ‘나’가 신분 상승에 성공하는 서사는 제시되지 않는다.
- ③ 가족 간 대화의 부재가 오히려 김 박사의 주장과 실제의 모순으로 제시된다.
- ④ 천방산과 큰 나무는 사회적 인물 판단의 거리 문제를 비유한다.
- ⑤ 전화 장면은 예절 교육이 아니라 김 박사의 외적 태도와 내적 실체의 대비를 보여 주는 장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