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칙 「강로전」 · 김상헌 「호종상가사면상소」
두 작품은 명·후금(청)의 대립과 조선의 대응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강로전」은 강홍립의 전투 태도와 후금에 대한 대응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하고, 「호종상가사면상소」는 병자호란 이후 김상헌이 호종 공신의 상가를 사양하며 대명 의리와 청에 대한 경계심을 강조한 상소문입니다.
22 ② · 23 ④ · 24 ② · 25 ② · 26 ② · 27 ③
핵심은 김응하가 조선군 삼영 편제를 주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 [A]는 처음 알게 된 ‘밀지’의 존재에 대한 놀라움과 궁금증을, [B]는 밀지의 실제 존재 여부에 대한 의심과 공개 요구를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또한 ⓐ 밀지는 강홍립의 소극적 전투 태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고, ⓑ 초안은 청에 항복한다는 국가의 패배를 인정하는 문서입니다.
작품 원문
(가) 권칙 「강로전」
[앞부분 줄거리] 강홍립은 조선 선조 때부터 광해군 때에 이르기까지 요직에 있으면서 나라를 지킬 중신으로 평가받는다. 1618년에 후금이 명나라를 침공하자, 명나라에서는 후금을 협공하자는 편지를 조선에 보내고, 조정에서는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강홍립을 원수로 임명하여 군대를 출정시킨다.
군대가 대동강을 지날 때까지는 별일이 없었다. 평안도는 번화한 곳이라, 홍립은 이르는 곳마다 느긋하게 술을 마시며 군대 일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종사관 이민환이 틈을 봐 이렇게 말했다.
“오랑캐가 재앙을 일으켜 사해를 진동시키매 주상께서 좌불안석하시며 오랑캐 소탕의 임무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니 즉각 전쟁 준비에 나서서 병사들을 격려하고 흥기시켜 주상 전하의 기대에 부응하고, 원수의 직분을 다하여 적을 무찌름으로써 명예를 드높일 일입니다. 그렇건만 어찌하여 일없이 세월을 보내며 술잔이나 기울이고 계신단 말입니까? 병사들이 이를 보고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겠습니까?”
홍립이 태연히 대답했다.
“㉠그대에겐 항우의 용맹이 없고 나 또한 초나라 장군 송의가 아니거늘, 어찌 싸움터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모든 일에는 완급이 있는 법이고 주상께서 내리신 ⓐ밀지(密旨)가 내게 있으니, 그대는 걱정 말라!”
이민환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A] “‘밀지’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홍립이 말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테니, 여러 말 하지 말라.”
이민환이 감히 더 묻지 못했다. 이 일을 전해 들은 진중(陣中)의 장수들은 모두들 화가 머리끝까지 나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목숨을 걸고 적을 향해 달려가고자 하건만, 원수라는 자는 거드름을 피우며 밀지가 있다는 허튼소리나 하고 있소. 군사를 일으켜 적을 정벌하러 나선 판에 밀지가 있어 싸우지 않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이오!”
장수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자 이민환이 이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원수의 속마음을 아직 헤아릴 수 없소. 섣불리 선동했다가는 우리 군대에 이로울 것이 없으니, 우선 참고 일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도록 합시다.”
선천 군수 김응하는 홍립에게 싸우려는 뜻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먼저 한 부대를 이끌고 앞서가서 적과 맞서 보겠다고 청하였다. 홍립이 허락한 뒤 보병 5천 명을 내주며 이 부대를 좌영(左營)이라 하고 선봉으로 삼았다. 또 운산 군수 이일원으로 하여금 우영(右營)을 이끌게 하고, 자신과 김경서는 다수의 병사를 거느리고 중영(中營)이 되어 의주에 머물렀다.
(중략)
이튿날 행군을 시작하매 두 나라의 병사들이 긴 대오를 이루었다. 사흘을 행군하여 우모령에 이르자 홍립이 유정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군량이 떨어져 병사들이 굶주려 있으니 적병을 만나면 반드시 궤멸될 것입니다.”
유정은 어쩔 수 없어 행군을 하루 멈추고 군사들을 머물러 있게 했다. 그러자 유격 교일기가 유정에게 소리 높여 말했다.
“조선 병사들에게 식량이 없는 게 아니라 움츠리고 앉아 사태를 관망하려는 것입니다. 저 음험한 속을 헤아릴 길이 없군요!”
마침내 칼을 뽑아 금세라도 벨 듯 홍립을 겨누었다. 조선의 장수들도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군량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는데 늘 바닥이 났다고 말하여 중국 장수의 화를 돋우는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홍립이 말했다.
“나에게 밀지가 있으니, 때가 되면 알 수 있을 거요.”
[B] 장수들이 말했다.
“밀지에 오직 물러나 움츠리고 있으라고만 써 있습니까? 지금이 바로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라던 그때이니 밀지를 열어 여러 사람들의 의심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홍립이 말했다.
“며칠 돌아가는 사정을 보는 게 좋겠소.”
홍립은 즉시 만주어 역관 하서국 등 세 명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오랑캐의 사정을 완전히 정탐하지 않은 채 중국 장수의 말만 듣다가는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몰래 건주로 들어가서 누르하치에게 이렇게 말을 전하도록 해라.
‘우리 두 나라는 본래 원수진 일이 없거늘, 이번에 군대를 일으킨 것은 남조의 핍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 군대가 마주친다면 서로 무기를 쓰지 말고 강화(講和)를 맺도록 합시다.’”
그러고는 밀봉한 편지 한 통을 주어 보냈다.
하서국 등이 급히 말을 몰아 건주로 들어가서, 먼저 누르하치의 장자(長子)인 귀영가를 만나 보고는 찾아온 뜻을 자세히 말한 뒤 밀봉한 편지를 전했다. 귀영가가 들어가 말을 전하자 누르하치는 편지를 뜯어본 후 하늘에 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도우시는구나! 남조의 군대가 길을 넷으로 나누어 달려오고 있지만 나의 근심은 다른 세 곳에 있지 않고 오직 이 한 곳에 있었다. 요동백쯤이야 채찍으로 후려치면 그만이지만, 내가 두려워한 것은 조선이 저들을 돕는 일이었다. ㉡옛날 요나라의 10만 정예 부대가 홍화진까지 쳐들어간 적이 있었지만, 수레 한 대도 돌아오지 못했다. 듣건대 조선은 병사들이 굳세고 무기가 훌륭하다 하니 대적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저들이 자진해서 항복하는 글을 보냈으니, 이 어찌 하늘이 우리로 하여금 금나라의 유업을 잇게 하고자 함이 아니겠느냐?”
이민환: 강홍립의 종사관으로 출전하였다가 후금의 포로가 됨. · 김경서: 강홍립 휘하의 부원수로 출전함. · 유정: 조선군과 연합한 명나라군의 장수. · 누르하치: 후금의 초대 황제. 청나라 발전의 기틀을 세움. · 남조: 명나라를 가리킴. · 강화: 싸우던 두 편이 싸움을 그치고 평화로운 상태가 됨.
(나) 김상헌 「호종상가사면상소」
전 판서 신(臣)은 진실로 황공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삼가 절하고 주상 전하께 상언하옵니다.
삼가 아룁니다. 신은 본래 병든 사람인 데다 나이가 많아 망령이 들었는데, ‘머리카락을 뽑을 만큼 죄가 많다.’는 글에 가슴이 무너졌고 하늘과 땅이 거꾸로 뒤집히는 변란 때에 본정신을 잃었으니, ㉢형체야 아직 살아 있지만 정신은 이미 죽어서 마치 흙덩이와 나무토막과 같사와 다시는 조정에 서서 벼슬살이할 희망을 가지지 않았고, 타향을 정처 없이 떠돌면서 조석(朝夕)으로 목숨이 다하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뜻밖에도 남한산성에 호종(扈從)했던 신하들이 모두 상가(賞加)를 받는다고 들었사온데 신의 이름도 그중에 들어 있으니, 신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끝내는 부끄럽고 두려웠으며, 열흘이 가고 한 달을 넘겨도 더욱 스스로가 편안치 못합니다.
저 남한산성에 대가(大駕)가 머물렀을 때, 대신들과 집정자들은 다투어 성 밖으로 나가시기를 권하였지만 신은 감히 죽기로써 지켜야 한다는 의리로 망령되게 탑전(榻前)에 아뢰었으니, 신의 첫 번째 죄이옵니다. 오랑캐에게 항복하는 문서의 문장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손으로 그 ⓑ초안을 찢어 버리고 묘당(廟堂)에서 통곡하였으니, 신의 두 번째 죄이옵니다. 양궁(兩宮)께서 친히 오랑캐의 진영에 나아가는데, 말 앞에서 머리를 부숴서라도 막지 못했고 병으로 또 대가를 따라가지 못했으니, 신의 세 번째 죄이옵니다. ㉣신은 이 세 가지 죄를 짓고서도 오히려 형벌을 면하고 있는데, 어찌 감히 처음부터 끝까지 임금의 말고삐를 잡고 따랐던 여러 신하들과 함께 똑같이 은전(恩典)을 받을 수 있겠사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미 내리신 명을 속히 거두시어 권장하고 징계하는 도리를 밝히소서. 신과 같은 자가 외람되이 그 곁에 끼어 있으면 고쳐 바로잡으라는 공론(公論)이 반드시 있을 것인데도, 멀리 떨어진 시골에 있고 문견도 미치지 못하면서 외람되이 이렇게 번거롭게 아뢰고 있으니 어찌 그릇된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또 신이 삼가 생각건대, ㉤여름이나 겨울이 그치지 않는 한 가죽옷과 갈포(葛布) 옷을 없애서는 안 되니, 적국이 멸망하지 않았으면 싸우고 지키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되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원수를 갚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복수하는 뜻을 가다듬으시고 최후의 보루가 될 성을 더욱 수축하시어 국가가 또다시 치욕을 당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 한때 강요된 화친(和親)의 맹약을 믿지 마시고 지난날 명나라의 크나큰 덕을 잊지 마시며, 호랑이나 이리같이 사납고 무자비한 자들의 인(仁)을 너무 믿지 마시고 부모와 같은 명나라를 가벼이 단절하지 마셔야 하는데, 누가 능히 이런 것들을 가지고 전하를 위하여 간절하고도 간절하게 진계(陳戒)하겠습니까?
무릇 부모의 나라와 원수가 되고 오랑캐에 의해 부림을 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부끄러운 바이니, 선왕께서 천자에게 올린 글에 쓴 ‘만절필동(萬折必東)’이란 말을 생각할 때마다 저절로 눈물이 옷깃을 적시나이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소서. 신은 제정신을 잃고 또다시 망발을 하였으니 만 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신은 너무도 두려워 떨리고 애타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머리카락을 뽑을 만큼 죄가 많다.’는 글: 청에 보내기 위해 최명길이 작성한 국서(國書)를 가리킴. · 호종: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던 일. · 상가: 상으로 품계를 올려 주던 일. · 대가: 임금이 타던 수레. · 탑전: 왕의 자리 앞. · 양궁: 인조와 세자. · 화친: 나라와 나라 사이에 다툼 없이 가까이 지냄. · 진계: 신하가 임금에게 이변에 대하여 경계하고 두려워하라는 뜻으로 상소를 올리는 일. · 만절필동: 강물은 만 번 굽이쳐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뜻으로, 변함없는 충절을 강조한 말.
1. 작품별 핵심 정리
| 항목 | 「강로전」 | 「호종상가사면상소」 |
|---|---|---|
| 갈래 | 전(傳)·역사적 인물의 행적과 평가 | 상소문 |
| 중심 상황 | 심하 전투를 앞두고 전투에 소극적인 강홍립과 이에 반발하는 장수들 | 병자호란 이후 호종 공신 상가를 사양하는 김상헌 |
| 인물 태도 | 강홍립을 비판적으로 형상화 | 자신의 공을 인정하지 않고 청에 대한 경계와 대명 의리를 강조 |
| 핵심 가치 | 대명 의리, 장수의 책임 문제 | 대명 의리, 충절, 청에 대한 경계 |
2. 「강로전」 중요 장면별 정밀 해설
출정한 원수에게 기대되는 긴장감·책임감과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이후 장수들의 적극적 전투 의지와 대비되어 강홍립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강화합니다.
이민환은 ‘원수의 직분’을 강조하며 전쟁 준비와 병사 격려를 촉구합니다.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고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관점이 드러납니다.
강홍립은 이민환을 항우보다, 자신을 송의보다 못한 인물로 낮춰 비교하면서 전투에 나서지 않는 태도를 합리화합니다.
강홍립이 전투에 소극적인 이유를 정당화하는 수단입니다. 장수들은 실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점차 이를 의심합니다.
처음 듣는 ‘밀지’라는 대상의 존재 자체에 놀라며 구체적 내용을 알고 싶어 합니다. 이 단계에서 강홍립의 말을 불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적을 향해’ 가려는 장수들의 태도와 강홍립의 태도가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작품의 강홍립 비판 의식이 강화됩니다.
김응하는 자신이 한 부대를 이끌고 앞서 싸우겠다고 청하지만, 삼영의 편제를 주도한 인물은 강홍립입니다. 강홍립이 좌영·우영·중영을 배치합니다.
작품 안에서는 실제 군량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는데 강홍립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명군 장수와 조선 장수들의 의심을 더욱 키웁니다.
장수들은 이제 ‘밀지’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며, 실제로 있다면 열어 내용을 공개해 의심을 풀라고 요구합니다. [A]보다 불신이 심화된 단계입니다.
강홍립은 조선이 명나라의 압박 때문에 출정했다며 후금과 강화하자고 제안합니다. 작품은 이를 명에 대한 배신과 후금에 대한 항복의 맥락으로 형상화합니다.
누르하치는 조선군의 강함을 과거 전쟁 사례와 연결해 평가합니다. 이는 조선군과 맞서지 않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근거이지 적군 규모를 추정해 전략을 세우자는 말이 아닙니다.
3. 「호종상가사면상소」 중요 문장별 정밀 해설
병자호란과 항복의 충격으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빠진 상태를 과장·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흙덩이와 나무토막’은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를 형상화합니다.
김상헌은 자신이 공을 인정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상을 받는 것을 영예로 여기기보다 오히려 명분에 어긋나는 일로 받아들입니다.
남한산성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일을 스스로 ‘죄’라 부릅니다. 실제로 자신의 신념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뜻과 현실적 결과에 비추어 상을 받을 수 없다는 논리를 강화하는 겸양적 표현입니다.
청에 항복하겠다는 국서의 초안입니다. 김상헌은 이를 찢고 통곡합니다. 국가의 패배를 인정하는 문서이며, 그가 대명 의리와 항청 의식을 지녔음을 보여 줍니다.
인조와 세자가 청나라 진영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숨 걸고 막지 못했고, 병 때문에 호종하지 못한 일을 죄로 규정합니다.
과거에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을 모두 잘못으로 규정해, 자신이 다른 호종 신하들과 같은 은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강화합니다.
계절의 순환에 맞춰 옷을 대비하듯, 적국이 존재하는 한 전쟁과 방어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비유입니다. 청에 대한 지속적인 경계심을 전달합니다.
국가적 치욕을 잊지 말고 어려움을 견디며 복수의 뜻을 다져야 한다는 요청입니다.
명나라를 부모에 빗대어 대명 의리의 강도를 극대화합니다. 청을 ‘호랑이나 이리’에 비유하는 부분과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강물이 여러 번 굽어도 결국 동쪽으로 흐르듯, 상황이 변해도 명에 대한 충절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4. 두 작품의 역사 인식 비교
| 비교 | 「강로전」 | 「호종상가사면상소」 |
|---|---|---|
| 청/후금 인식 | 후금을 ‘오랑캐’로 보고, 강홍립의 강화·항복 태도를 비판적으로 형상화 | 청을 사납고 믿기 어려운 적국으로 인식하며 경계를 강조 |
| 명 인식 | 명과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장수들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제시 | 명나라를 ‘부모와 같은’ 나라로 표현하며 대명 의리를 직접 강조 |
| 핵심 문제 | 전쟁에서 원수의 태도와 책임 | 호종 공신 포상 사양과 국가적 치욕 이후의 대응 |
| 공통점 |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중시하고 청·후금과의 화친·항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 |
5. 24번 비교 자료 — 이민환 『책중일록』
1619년 3월 3일 군졸이 여러 날 굶자 강홍립이 부락을 약탈하고 땅에 숨긴 곡식을 빼앗아 죽을 만들어 먹게 함.
1619년 3월 4일 강홍립과 김경서는 화해하여 퇴각하면 3,000~4,000명 군졸의 생명을 살리고 변방 방어 문제도 덜 수 있다고 판단함.
핵심 차이: 「강로전」은 군량 부족을 강홍립의 거짓말로 형상화하지만, 『책중일록』은 실제 군량 부족과 병사들의 부상·기아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그것이 후금과의 화해 결정 배경이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6. 출제 포인트 20
- 「강로전」은 강홍립의 전투 태도를 비판적으로 형상화한다.
- 이민환은 장수들의 분노를 진정시키며 강홍립의 의중을 더 지켜보자고 한다.
- 김응하는 선봉을 자청하지만 삼영 편제를 주도한 인물은 아니다.
- 좌영·우영·중영을 편제한 주체는 강홍립이다.
- 유정은 군량 부족을 말하는 강홍립의 요구를 받아들여 행군을 멈춘다.
- 교일기는 강홍립의 의도를 불순하다고 본다.
- [A]는 처음 알게 된 밀지의 존재에 대한 놀라움과 궁금증이다.
- [B]는 밀지 존재에 대한 의심과 정보 공개 요구이다.
- ⓐ 밀지는 강홍립의 소극적 전투 태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다.
- ㉡은 조선군의 강함을 보여 주는 과거 패전 사례이다.
- 『책중일록』에는 실제 군량 부족과 병사들의 고통이 기록되어 있다.
- 「강로전」과 『책중일록』은 동일 역사 사건을 다르게 형상화한다.
- 「호종상가사면상소」는 호종 공신의 상가를 사양하기 위한 글이다.
- ㉢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삶의 의욕 상실을 비유한다.
- ⓑ는 청에 항복하는 국서 초안이다.
- ㉣은 상가를 받을 수 없다는 논리를 강화한다.
- ㉤은 적국이 존재하는 한 국방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비유이다.
- 김상헌은 청과의 화친이 강요된 것이므로 계속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 ‘만절필동’은 변함없는 충절을 의미한다.
- 두 작품은 모두 대명 의리를 내세운다는 공통점이 있다.
7. 핵심 빈칸 확인
8. EBS 실전 4회 22~27번 상세 해설
22. 「강로전」 내용 이해 정답 ②
김응하는 강홍립이 싸울 뜻이 없다고 보고 자신이 선봉으로 나가겠다고 청했을 뿐입니다. 좌영은 김응하, 우영은 이일원, 중영은 강홍립과 김경서로 편제한 주체는 강홍립입니다.
- ① 이민환은 강홍립의 의중을 파악하기 전에는 섣불리 행동하지 말자고 장수들을 설득합니다.
- ② 김응하가 삼영 편제를 주도했다는 설명이 틀립니다.
- ③ 유정은 군량 부족을 이유로 한 강홍립의 요구를 받아들여 행군을 하루 멈춥니다.
- ④ 교일기는 강홍립이 일부러 사태를 관망한다고 보고 분노합니다.
- ⑤ 누르하치는 조선군의 강함을 두려워했으며 조선이 명을 돕지 않는 상황을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23. [A]와 [B]의 대화 특징 정답 ④
[A]에서 이민환은 처음 알게 된 ‘밀지’의 존재에 놀라며 내용을 묻습니다. [B]에서 장수들은 강홍립이 계속 밀지만 언급하자 실제 존재 여부를 의심하며 밀지를 열어 공개하라고 요구합니다.
- ① [A]는 논리 오류를 지적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 ② [A]에서는 아직 불신보다 놀라움과 궁금증이 중심입니다.
- ③ [B]는 새 사실로 기존 정보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여부를 의심하며 확인을 요구합니다.
- ④ 존재를 몰랐던 대상에 대한 놀라움과,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는 대상의 공개 요구를 정확히 설명합니다.
- ⑤ [A]에는 문제 해결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24. 「강로전」과 『책중일록』 비교 정답 ②
『책중일록』은 군량 고갈, 행군으로 인한 병사들의 부상, 굶주림과 약탈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이러한 피해가 후금과의 화해 결정 배경이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강로전」에는 이러한 실제 피해 상황이 묘사되지 않고, 오히려 군량 부족 발언이 거짓으로 제시됩니다.
- ① 두 글 모두 조선이 명·후금 사이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정책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 ② 『책중일록』에만 후금과 화해를 결정하게 된 아군의 실제 피해 상황이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 ③ 「강로전」에는 교일기와 강홍립의 갈등이 있지만 『책중일록』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 ④ 『책중일록』에는 군량 부족 해결 행동이 있지만 「강로전」에서는 군량 부족 자체가 거짓으로 형상화됩니다.
- ⑤ 「강로전」의 갈등은 지배층 권력 투쟁이 아니라 강홍립의 전투 태도를 둘러싼 갈등입니다.
25. ⓐ 밀지와 ⓑ 초안 정답 ②
ⓐ는 강홍립이 후금과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 태도를 정당화하는 근거입니다. ⓑ는 청에 항복한다는 내용을 담은 국서의 초안으로 국가의 패배를 인정하기 위한 문서입니다.
- ① ⓑ는 적군의 전술을 파악하기 위한 문서가 아닙니다.
- ② 두 문서의 기능을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 ③ ⓑ는 김상헌이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가 아니라 왕의 이름으로 청에 보내려던 외교 문서입니다.
- ④ ⓐ는 광해군의 실추된 권위 회복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 ⑤ ⓑ는 청의 위험을 경고하는 문서가 아니라 청에 항복한다는 문서입니다.
26. ㉠~㉤의 의미 정답 ②
㉡은 요나라 정예군의 패전 사례를 통해 조선군이 매우 강하므로 맞서 싸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는 누르하치의 판단입니다. 적군 규모를 계산해 전략적으로 전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 ① ㉠은 역사적 인물을 자신과 상대의 비교 대상으로 삼아 소극적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 ② ‘적군 규모 추정과 전략 수립’이라는 해석이 부적절합니다.
- ③ ㉢은 정신적 고통과 삶의 의욕 상실을 비유합니다.
- ④ ㉣은 자신이 한 일과 하지 못한 일 모두를 죄로 규정해 상가를 사양하는 논리를 강화합니다.
- ⑤ ㉤은 계절에 대비하듯 적국이 존재하는 한 국방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27. 외적 준거에 따른 감상 정답 ③
김상헌이 ‘강요된 화친의 맹약’을 믿지 말라고 한 것은 청과의 화친이 강요된 것이었으므로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뜻입니다. 상가를 받는 것을 부끄러워한 것은 호종의 공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생각과 관련되지만, 남한산성 호종 자체가 자발적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 ① 「강로전」은 장수들의 적극적 태도와 강홍립의 소극적 태도를 대비해 패전 책임을 강홍립에게 돌리는 방향으로 형상화합니다.
- ② 강홍립이 후금에 항복하는 편지를 보내는 모습은 그를 명을 배신한 인물로 규정하려는 작가의 처세와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 ③ 남한산성 호종에 자발성이 없었다고 본 부분이 부적절합니다.
- ④ 김상헌은 싸워 보기도 전에 청과 강화하는 것을 먼저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의리를 강조합니다.
- ⑤ 두 작품 모두 후금·청을 오랑캐로 낮춰 보고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강조합니다.
9. 수능형 변형문제 10제
선택지를 누르면 정답과 해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품은 이 대비를 통해 강홍립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합니다.
23번의 핵심입니다.
ⓑ와 구별해야 합니다.
24번 비교의 가장 중요한 차이입니다.
겸양과 자기책임의 언어를 통해 포상 사양의 명분을 세웁니다.
김상헌은 이 초안을 찢고 통곡합니다.
계절 대비를 국가 안보의 지속적 대비에 빗댄 표현입니다.
‘만 번 굽어도 동쪽으로 흐른다’는 말은 변함없는 충절을 뜻합니다.
EBS 외적 준거에서 두 작품을 연결하는 핵심 가치입니다.
「강로전」은 강홍립에 대한 평가가, 상소문은 김상헌의 대명 의리와 자기 판단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