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도도한 생활」 해설 및 변형문제
01 작품 원문
앞부분 줄거리
어린 시절 만두 가게를 하는 엄마는 ‘나’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나’에게 피아노를 사 준다. ‘나’는 이따금 만두 가게 안에 놓인 피아노를 치고, 엄마는 그 모습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빠의 빚보증으로 집안이 망해 값진 물건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지만 엄마는 피아노를 팔지 않으려 한다. 대학에 합격한 ‘나’는 언니가 사는 서울 반지하 셋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엄마의 부탁을 받아 피아노를 가지고 간다. 이사 간 집의 집주인은 피아노를 가져온 ‘나’를 못마땅해하고, ‘나’는 집주인에게 피아노를 절대 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컴퓨터로 학원 교재나 시험지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언니는 편입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된 생활을 이어 간다.
전개 · 고단한 생활과 사회적 고립
초여름이었다. 이따금 비가 오다 그쳤고, 다시 내렸다. 창밖, 보도 위의 빗방울들이 수많은 원을 그리며 내 머리 위에 아름답게 떠 있었다. 비는 하늘이 아닌 지상에서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입안에 건포도를 털어 넣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건포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그걸 먹으면 왠지 까맣게 졸아붙은 캘리포니아 햇빛을 씹어 먹는 기분이었다. 언니는 번화가에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계산대 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언니는 새벽마다 어깨에 쌀 포대만 한 졸음을 이고 학원에 갔고, 주말이면 다리 사이에 그 포대를 끼고 한없이 깊은 잠을 잤다. 언니는 종종 옛 애인과 통화했다. 그는 훌쩍이며 집 앞에 찾아오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따금 비가 오다 그쳤고, 다시 내렸다. 나는 티브이 앞에 앉아 ‘오늘의 날씨’를 경청했다. 언니가 집을 비우면, 청소를 하고 손쉬운 반찬을 만들고 햇빛 알갱이가 들어 있다는 합성 세제로 빨래를 했다. 티브이에선 곧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 소식을 전해 왔다. 나는 플라스틱 통에 든 습기 제거제를 사다 싱크대 안쪽과 옷장, 신발장에 넣어 두었다. 저축한 돈이 있으니 사소한 재해쯤이야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어서 학교에 가고 싶었다. 얼추 한 학기 등록금을 모았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피로’나 ‘긴장’을 느끼고 싶었다. 긴장되는 옷을 입고, 긴장된 표정을 짓고, 평판을 의식하며, 사랑하고, 아첨하고, 농담하고, 험담하고, 계산적이거나 정치적인 인간도 한번 돼 보고 싶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가전제품뿐이었다. 나는 냉장고에게 잘 보이거나, 전기밥통을 헐뜯고 싶지 않았다. 첫 월급을 탔을 때 누구를 만나, 어떻게 돈을 써야 할지 몰라 당황했었다. 이대로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일만 하다 죽을 수는 없다고, 매일 어깨에 의자를 이고 등교하는 아이처럼 평생 아르바이트만 하고 살 순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손가락이 나뭇가지처럼 기다랗게 자라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나는 손가락만 진화한 인간 타자수가 되어 ‘다음 중 맞는 답을 고르시오.’라는 문장을 끊임없이 치고 있었다. 그리고 산더미만 한 문제지를 들고 인쇄소에 찾아가면, 그걸 전부 나더러 풀라는 것이었다. 나는 건포도를 오물거리며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하고 안도했다. ‘8월에는 동대문에 옷을 사러 가야지. 화장은 언니에게 배우고, 아르바이트는 반드시 집 밖에서 하는 걸로 해야겠다.’ 도 다음엔 레가 오는 것처럼 여름이 끝난 후 반드시 가을이 올 것 같았지만, 계절은 느릿느릿 지나가고, 우리의 청춘은 너무 환해서 창백해져 있었다.
위기 · 피아노 소리와 집주인의 반응
방 안은 눅눅했다. 자판을 치다 주위를 둘러보면, 습기 때문에 자글자글 운 공기가 미역처럼 나풀대며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벽지 위론 하나둘 곰팡이 꽃이 피었다. 피아노 뒤에 벽은 상태가 더 심했다. 건반 하나라도 누르면 꼭 그 음의 파동만큼 날아올라, 곳곳에 포자를 흩날릴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피아노가 썩을까 봐 걱정이었다. 몇 번 마른걸레로 닦아 봤지만 소용없었다. 우선 달력 몇 장을 찢어 피아노 뒷면에 덧대 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곧 피아노 건반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골에서부터 이고 온 것인데, 이대로 망가지면 억울할 것 같았다. 한날 마음을 먹고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았다. 그런 뒤 두 손으로 건반 뚜껑을 들어 올렸다. 손안에 익숙한 무게감이 전해져 왔다. 내가 알고 있는 무게감이었다. 곧 88개의 깨끗한 건반이 눈에 들어왔다. 악기는 악기답게 고요했다. 나는 건반 위에 손가락을 얹어 보았다. 손목에 힘을 푼 채 뭔가 부드럽게 감아쥐는 모양을 하고, 서늘하고 매끄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조금만 힘을 주면 원하는 소리가 날 터였다. 밖에선 공사음이 들려왔다. 며칠 전부터 주인집을 보수하는 소리였다. 문득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사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단 그런 마음이 들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한 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소리는 금방 사라져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용기 내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도 ― ”
도는 방 안에 갇힌 나방처럼 긴 선을 그리며 오래오래 날아다녔다. 나는 그 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가슴속 어떤 것이 엷게 출렁여 사그라지는 기분이었다. 도는 생각보다 오래 도 ― 하고 울었다. 나는 한 음이 완전하게 사라지는 느낌을 즐기려 눈을 감았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쿵쿵쿵쿵. 주먹으로 네 번이었다. 나는 얼른 피아노 뚜껑을 덮었다. 다시 쿵쿵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어 보니 주인집 식구들이었다. 체육복을 입은 남자와 그의 아내, 두 아이가 나란히 서 있었다. 사내아이는 아빠와 계집아이는 엄마와 똑 닮아 있었다. 외식이라도 갔다 오는지 그들 모두 입에 이쑤시개를 물고 있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학생, 혹시 좀 전에 피아노 쳤어?”
나는 천진하게 말했다.
“아닌데요.”
주인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친 거 같은데……?”
나는 다시 아니라고 했다. 주인 남자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내가 곰팡이 얘길 꺼내자 “지하는 원래 그렇다.”라고 말한 뒤,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피아노 옆에 기대어 앉았다. 그런 뒤 무심코 휴대 전화 폴더를 열었다. 휴대 전화는 번호마다 고유한 음이 있어 단순한 연주가 가능했다. 1번은 도, 2번은 레, 높은 음은 별표나 영을 함께 누르면 되는 식이었다. 더듬더듬 버튼을 눌렀다. 미 솔미 레도시도 파, 미 솔미 레도시도 레레레 미……. ‘원래 그렇다.’라는 말 같은 거, 왠지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부터 폭우가 내렸다. 언니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늦는다고 했다. 벌써 퇴근했어야 하는 시간인데 정산을 잘못한 모양이었다. 언니는 계산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본 뒤, 안 맞을 경우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고, 같은 일을 반복하며 밤을 새울 터였다. 나는 만두라면을 먹으며 연속극을 보고 있었다. 볼륨을 한껏 높였는데도 배우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리모컨을 잡으니 뭔가 축축한 게 만져졌다.
한참 손바닥을 들여다본 후에야 그것이 빗물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에서부터 물이 새고 있었다. 이물질이 잔뜩 섞인 새까만 빗물이었다. 그것은 벽지를 더럽히며 창틀 아래로 흘러내렸다. 벽면은 검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누군가의 얼굴 같았다. 허둥지둥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한참 만에 전화를 받았다. 언니는 의외로 담담했다. 언니는 그런 적이 몇 번 있다고, 걸레로 닦아 내면 괜찮을 거라고 말한 뒤 바쁜 듯 전화를 끊었다. 언니가 그렇게 말해 주니, 섭섭하면서도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멍하니 서 있다,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렸다. 현관 앞 신발들을 모두 신발장 안에 넣고, 컴퓨터와 티브이 등 가전제품의 콘센트를 뽑았다. 피아노 주위엔 마른 수건 몇 장을 단단히 둘러놓았다. 방바닥에 고인 물은 걸레로 훔쳐 내면 될 일이었다. 나는 걸레로 바닥을 닦은 뒤 세숫대야에 물을 짜내고 훔쳐 내는 일을 반복했다. 구정물은 화장실에 버리고, 마른 수건으로 한 번 더 물기를 없앴다.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언니 말대로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쯤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한바탕 집 안을 정리하고 숨을 돌리며 허리를 폈다. 그리고 상쾌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조금 전 물기를 닦아 낸 곳에 다시 빗물이 고여 있었다.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이었다. 나는 하얗게 질려 언니에게 전화했다.
“언니.”
언니가 주위 눈치를 보는 듯 조그맣게 대꾸했다.
“왜?”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비 와.”
언니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그래, 아까도 말했잖아.”
나는 아이처럼 훌쩍였다.
“응, 근데 자꾸 와.”
언니는 조용히 나를 타이르며 집으로 갈 테니, 그때까지만 참으라고 했다.
“언제 올 건데?”
언니는 모르겠다고, 하지만 곧 가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물은 발등까지 차올랐다. 빗물에서 매캐하고 비릿한 도시 냄새가 났다. 주인집에 도움을 청할까 싶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어쨌든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우선 컴퓨터 전선을 한데 묶어 서랍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쓰레받기를 이용해 빗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물은 계단과 창문을 타고 자꾸자꾸 들어왔다.
중략 부분 줄거리
‘나’는 집으로 들어온 빗물을 퍼내다가 돈이 필요하다는 아빠의 전화를 받는다. 얼마 뒤 술에 취해 찾아와 현관 앞에 누운 언니의 예전 애인을 가까스로 피아노 의자 위로 옮겨 누인다.
결말
빗물은 어느새 무릎까지 차 있었다. 나는 피아노가 물에 잠겨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대로 두다간 못 쓰게 될 것이 분명했다. 순간 ‘쇼바’를 잔뜩 올린 오토바이 한 대가 부르릉 ― 가슴을 긁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흙먼지 사이로 수천 개의 만두가 공기 방울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언니의 영어 교재도, 컴퓨터와 활자 디귿도, 아버지의 전화도, 우리의 여름도 모두 하늘 위로 떠올랐다 톡톡 터져 버렸다. 나는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깨끗한 건반이 한눈에 들어왔다. 건반 위에 가만 손가락을 얹어 보았다. 엄지는 도, 검지는 레, 중지와 약지는 미 파. 아무 힘도 주지 않았는데 어떤 음 하나가 긴 소리로 우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도 ― ”
도는 긴 소리를 내며 방 안을 날아다녔다. 나는 레를 짚었다.
“레 ― ”
사내가 자세를 틀어 기역 자로 눕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편안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손끝에서 돋아나는 음표들이 눅눅했다.
“솔 미 도레 미파솔라솔…….”
물에 잠긴 페달에 뭉텅뭉텅 공기 방울이 새어 나왔다. 음은 천천히 날아올라 어우러졌다 사라졌다.
“미미 솔 도라 솔…….”
사내의 몸에서 만두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빗줄기는 거세졌다 잦아지길 반복하고, 검은 비가 출렁이는 반지하에서 나는 피아노를 치고, 발목이 물에 잠긴 채 그는 어떤 꿈을 꾸는지 웃고 있었다.
02 작품 개관
| 갈래 | 단편 소설, 세태 소설 |
|---|---|
| 성격 | 감각적·사실적·상징적 |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 시간적 배경 | 어린 시절~대학 입학 시기, 1980~2000년대 |
| 공간적 배경 | 엄마의 만두 가게, 서울 반지하 셋방 |
| 제재 | 한 자매의 가난과 꿈 |
| 주제 | 젊은 세대의 고단한 삶과 극복 의지 |
| 발단 | 어린 시절 엄마가 피아노를 마련함 |
| 전개 | 집안 몰락 뒤 서울 반지하 셋방에서 아르바이트 |
| 위기 | 피아노 소리에 대한 항의와 폭우에 따른 침수 |
| 절정 | 아버지의 전화, 언니의 옛 애인 방문 등 시련의 중첩 |
| 결말 | 물에 잠겨 가는 피아노를 연주함 |
